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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y 4시간전

엄마라는 단어가 가진 위대함에 대하여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마흔 살이 돼서야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현 대통령 덕분에 아직 삼십 대 이긴 하나 그래도 아직까지 만 나이라고 느껴져서 인지 그리고 외국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과 얘기 나눌 땐 한국 나이로 몇 살이고 인터내셔널 나이로는 만 나이로 알려주다 보니 아직 만 나이가 내 나이다라고 뼛속까지 느껴지진 않는 것 같다.


사실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겪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신혼 초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돈을 좀 모으면 그때 가지면 되지라고 생각하였고 항공사 지상직을 그만둘 때에는 밤근무가 몸에 좋지 않으니 프리랜서로 일하며 임신되면 육아에 전념해야겠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렇게 어영부영 3년을 지내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을 지나 후반이 되어가는데 이러다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하지 라는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임신을 고집했으나 어느덧 부부관계는 점점 줄기 시작하고 배란날짜를 체크해 가며 갖게 되는 부부관계 마저 서로에게 독이 되었는지 이로 인해 다투기까지 하였다.


임신을 핑계로 프리랜서로 일하다 뭔가 안정된 직장 예를 들면 아침에 출근해서 해지기 전에 퇴근하는 그런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그저 나의 로망이었을 뿐.. 내 뜻대로 되진 않았다. 그래서 알아보게 된 것이 IUI (인공수정) 이였다.


처음에는 인공수정(IUI)과 시험관 (IVF) 둘 다 상담을 받았다. 혹시 내가 설명을 놓치면 어쩌지라는 마음에 아랍어 가능한 알제리 친구와 함께 가서 상담을 다녀왔다. 담당선생님은 레바논 출신으로 나름 두바이에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예약조차 쉽지 않았으나 지인분 소개로 가게 된지라 덕분에 상담도 잘 받을 수 있었고 그다음번엔 신랑과 함께 방문하여 산전검사도 받았다.


첫 번째는 자연임신 시도를 권장한다 하셔서 날짜를 받았으나 임신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하게 된 첫 인공수정에서 생전 처음 겪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왠지 첫 번에 될 거 같다는 기대가 있었으나 역시 임신반응이 전혀 없었다. 선생님은 시험관시술을 권하였지만 보험 적용이 단 1%도 되지 않아 인공수정 1차 하는 것도 부담이었는데 시험관시술은 시도 조차 하기 어려웠다.


신랑을 설득하여 인공수정 2차를 시도하였으나 멍주사를 그렇게 맞고 약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술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담당 선생님 말에 임신이 될 거라는 작은 기대조차도 차마 할 수 없었다. 이미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매일 눈물만 흘리는 나에게 신랑은 반려견을 한 마리 더 키우자 제안했으나 그걸로는 위로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이 더 지났고 한국서 시험관시술로 임신이 된 지인 이야길 듣고 휴가 때 지인이 다녔던 병원에서 검사룬 받았으나 근종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만 하고 왔다.

그러다 신랑의 권유로 다녀온 다른 병원에서 자궁암이 의심되어 조직검사가 필요하단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신랑이 위로해 줘도 모든 게 비관적이게 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이러다 자궁을 적출해 내는 수술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불임이 되어 나는 임신도 할 수 없게 되는 건지 혼자 오만가지를 상상하게 되었다.


회사 팀장님께 내 상황을 말하고 가능한 현지에서 조직검사와 필요시 수술까지 해야겠다 결심했으나 보험사의 승인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선 급한 대로 검사를 받고 다행히 스테이지 0 이여서 추적검사를 잘하면 한다고 했으나 임신계획을 하고 있다고 하니 레이저로 태우거나 심할 경우 잘라 내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수술은 어렵지 않게 끝냈으나 근종수술은 따로 보험승인이 필요하다 하여 병가휴직을 내고 한국행을 택하였다. 한국에서는 나의 간수치가 높은 상태여서 바로 수술이 어려우니 간수치를 어느 정도 내린 후 수술하는 쪽을 권하였다.


식단관리와 운동 및 처방받은 약으로 한 달 반 만에 수술이 가능한 수치로 내릴 수 있었고 바로 수술날짜를 잡아 수술할 수 있었다. 회복은 2~3개월로 보고 있었고 그 후엔 임신 시도가 가능하다 말씀 주셨다.


그러던 와중에 다시 한번 시험관시술 가능여부류 확인하였다 근종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소가 많이 부어 있을 수 있어 좀 조심스러우나 시도는 가능하다고 하였다.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고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바로 1차 시도를 하고 싶다 하였다.


최대한 건강하게 먹고 많이 걷고 많이 자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돌주사라 불리는 악명 높은 주사도 호르몬의 노예로 만든 약들도 나의 간절함 보다 덜 했는지 준비하는 시간 내내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도 염원했던 첫 임신 반응에서 Positive 가 나와주었다. 병원에서 피검사할 때만 해도 착상혈에 대한 질문에서 그런 반응이 없어 이번에도 틀렸구나 싶었는데 임신반응이 있다는 간호사 선생님에 그 한마디에 길거리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서른아홉에 드디어 그토록 바랬던 첫 임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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