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보다 느린 거북이 같은 사람이다. 말과 행동이 느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고등학교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1.5년을 더 다녔고 대학교도 중간에 전과를 하여 5년이나 다녔다. 심지어 대학을 다니던 중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부모님께 선포를 내리고 Work Experience (일 경험)을 쌓겠다고 휴학도 2년이나 하였다. 10대와 20대를 버라이어티 하게 보내던 중에 대학 선배가 에미레이트 항공에 승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친한 친구의 결혼식 들러리를 하러 캐나다 밴쿠버에 갔다가듣게 되었다.
당시, 나는 대학 졸업을 한 학기를 앞둔 상태였고 휴학할 때 일본에서의 생활이 매우 만족스러웠어서 취업을 일본항공 (Japan Airlines) 또는 ANA (All Nippon Airways)를 목표로 하고 있던 때였다. 2011년 일본 대지진이 있었을 때, 도쿄에서 살았어서 부모님은 내가 일본으로 다시 가는 것을 한창 반대하고 있었다. 2012년 6월 대학교 졸업식 세리머니를 참석한 후 바로 다음날 나는 별 미련 없이 한국 부모님 댁으로 갔다. 그리고 부모님께 중동 항공사 승무원 준비를 하겠다고 통보드렸다. 나는 모태 뚱뚱이였기 때문에 승무원을 준비하겠다는 내 말에 아버지께서 코웃음을 치셨다. 태생이 고릴라인데 어떻게 침팬지가 되니 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승무원을 준비하는 1년 동안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을 (성형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경험하였다. 식단 다이어트는 물론이고 너무 사랑했던 술을 끊었으며 친구들도 멀리하였다. 그리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PT, 등산, 요가 그리고 경락 마사지까지 받으며 내 지방들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내 승무원 면접은 카타르를 시작으로 줄줄이 낙방이었다. 사실, 첫 카타르 승무원 면접을 최종 면접 직전 디스커션까지 가게 되어 나는 역시 뭐가 돼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 이후로는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심지어 대한항공 실무 면접 때는 질문을 4개나 받게 되어 나이가 많아도 되려나 하는 작은 기대치도 갖았으나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낙방에 이미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다 못해 땅굴까지 파서 들어갈 정도였다. 식단 다이어트는 계속하고 있어 이미 내 성격은 삐뚤어질 때로 삐뚤어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제발 먹어라 라는 말도 들어보았다. 내 생에 제일 행복하지 않을 때를 꼽으라면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각 항공사에 채용 정보를 매일 확인하며 이미 무너진 내 자존감 회복을 위해 호텔, 크루즈, 컨벤션 등 다른회사에도 지원하였고 최종 합격을 하였지만항공사 취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5년간 객실 승무원 한국 채용이 없던 에미레이트에서 지상직 채용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꿩 대신 닭이라는 마음으로 에미레이트 항공사 지상직 채용에 지원하였다. 항공사 지상직 승무원을 준비할 때 시스템 자격증이 있으면 좋다 더라 라는 말을 들었지만 객실 승무원 준비를 하다가 '에미레이트 항공사'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지원을 한 것이기 때문에 가산점이 될 자격증 따윈 없었다. 자격증이 없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안되면 말라지 라는 마음으로 그냥 면접이나 열심히 준비하자 생각하고 지상직 승무원에 지원하였다.
첫 면접은 에이전시 내에서 진행하는 한국어 면접이었다. 당시 에미레이트 항공사 지상직 채용은 강남 I 학원에서 있었기 때문에 강사진들이 직접 면접을 보았다. 한 타임에 4-5명이 들어가서 면접을 보았는데 한국어 면접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켰는데 해외 생활도 오래 했고 이미 달달 외워져서 자동판매기처럼?? 누르면 바로 나오던 때라 식은 죽 먹기였다. 가볍게 ‘합격’ 연락을 받고 두 번째는 에미레이트 항공사 면접관들이 있는데서 필기시험을 본다고 하였다. 필기시험을 보기 전에 Small Talk을 한 사람씩 하는데 나의 경우 A그룹 마지막 번호라 대기 시간이 길어 지루할 찰나에 호주 멜버른 출신이라는 면접관과 수다를 떠는 게 너무 신이 나 떨지 않고 편하게 그녀와 대화 할 수 있었다. 영어 필기시험은 문법 파트, 단문장으로 답하는. 롤플레이 파트, 그리고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나름 내 자신을조기유학 성공사례라고 입 아프게 말하고 다녔는데 영어 시험만큼은 당당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영어 시험까지 통과한 사람들은 대략 2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각자 파이널 면접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라고 하였다. 나는 호주 멜버른 출신 A가 내 면접관이 되어주길 기도했으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같은 호주 출신이지만 너무 차가워 보였던 퍼스 출신 B가 내 면접관이었다. 그래도 방긋 미소 지으며 그녀의 면접실로 들어갔다. 지상직 면접도 객실 승무원 면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생활, 사회 경험, 그리고 해외 경험이 있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것이다.
사실 외항사 면접이 준비할 때는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면접관들은 시간이 없고 서비스직 면접은 크게 차이가 없다. 내가 누구인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면접관 B와 대략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그녀가 나에게 언제 두바이에 올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난 왠지 합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971로 시작되는 번호로 골든콜을 받았고 2013년 10월 1일 두바이에 왔다.
그렇다. 나는 느린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때를 아는 사람이다. 내가 만약 에미레이트 항공사 지상직 채용에 콧방귀를 뀌었다면, 끝까지 다른 항공사 객실 승무원 면접에 도전했더라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계속 영어 강사로 살아갔다면 7년이 지난 지금 내가 여기에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내 신랑 M을 만날 수 있었을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때를 아는 사람은 분명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비록,남들에 비해늦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꿈꾸었던 에미레이트 항공사에서 일할 수 있었고 그리고 일본항공(JAL) 두바이 베이스 VIP 담당 지상직 승무원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미래의 내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