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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16. 2016

프롤로그

"방학을 돌려줘 "

  빨리 취업하는 것 만을 목표로 달려오다 운이 좋게도 23살에 직장인이 되었다. 대학 4년 내내 이어지던 지겨운 과외, 알바도 끝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더 큰 세상을 마주하는 일이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험난한 사회에 온몸으로 부딪치며 여러 번 혼란과 멘붕을 겪곤 했다. 혼자 처리해야 하는 일들 속에서 외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난감한 일이 이어질 때는 '이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 맞나'하는 고민이 이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좀 충격이었던 것은 이제 앞으로 방학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초, 중, 고,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16년을 여름, 겨울이면 한, 두 달씩 쉬면서 살아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그 시간을 앗아간다는 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1년에 쓸 수 있는 휴가는 길어봤자 15일. 그것도 야금야금 쪼개서 써야 한다니.......

  첫 직장에서의 1년이 지나고 머리 속은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고민들로 가득 찼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면 행복할까?',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도 잡생각이 많은 아이였지만 학교 안에서, 부모님과 여러 권위들 아래서 했던 내 생각들은 여전히 틀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 언제나 퍼져있는 순위 경쟁, 다른 사람의 칭찬과 시선, 평가에 익숙했고 이런 것들이 삶의 성공이나 행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어떤 보호도, 안전막도 없이 오롯이 내 인생을 맞딱뜨리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겁이 없고, 반항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1년 반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은 총 4학기 2년 과정이니 4번의 방학을 더 벌게 된 것이다. 갑자기 숨통이 트였다. 인생의 모든 것이 다 정해져 버린 게 아닐까 하는 답답함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이제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들을 보내기로 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작정하고, 야심 차게 2014년 2월에는 인도로 2015년 7월에는 유럽으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한 번도 예상한 적 없었던 내 인생의 어느 멋진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을 보내며 알게 되었다. 인생은 어차피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너무 걱정할 것도, 기대할 필요도 없다는 것. 다시 쳇바퀴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너무 지치지 말 것. '어느 멋진 달'은 언제든 또 예측하지 않았던 순간에 짠하고 나타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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