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간다고 한 뒤 사람들에게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인도에 가본 사람, 가보지 않은 사람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정말 좋았다고 강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지막 날까지 가지 말라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꼭 인도에 가보고 싶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색다르고 이상한 것, 특이한 것을 보고 싶었다. 그만큼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것일까?
좀 무섭기도 했다. 여행을 앞두면 늘 설레고 즐겁기 마련인데 인도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한마디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인도가 여자 혼자 떠나기에 위험한 여행지기도 하지만 내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많은 것들을 해치우고도 또 여전히 많은 것들을 남아있었다. 퇴사한 지 1년.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은 정말 신났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는 시간도 참 행복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앞날에 대한 걱정이 점차 다가오며 인생에 대한 고민들이 뒤엉켜 있었다. 내 키 만한 배낭만큼 마음의 짐도 무거웠다. 척박하게 공항에서 노숙할 생각을 하니 앞으로의 여행이 더욱 걱정스러웠다.
사람들이 말했다. "너..... 죽을 수도 있어." 죽을 각오를 하고 떠날 만큼 비장하게 여행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이상하게 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설마 죽겠어?' 하는 의심 때문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내 인생이 모습이 안정적이기보다는 항상 도전이자 모험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실패든 죽음이든 그 어떤 것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며 살기보다는 용기 있게 무엇이든 헤쳐나가며 살아가고 싶다. 오늘, 현재의 나 자신에 충실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이후에는 당장 내일 죽는 것도 별 상관이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말 인도는 여성 여행자에게 위험한 곳이라 특히, 여자 혼자라면 최대한 안전한 방법을 고려해 떠나야 한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만만치 않았다. 바가지를 쓰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다. 잔뜩 긴장한 채 택시를 잡아타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찾았던 다른 어떤 여행지와도 다른 이상한 분위기. 동남아시아 지역의 후끈한 여유로움도 유럽의 정돈된 모습도 아닌 인도만의 낯선 풍경이 다가왔다. 차선도 없이 달리는 차들, 말도 없이 내려서 아무 공터에서나 볼일을 보고 다시 차에 오르는 택시기사, 모든 것들이 나를 어리둥절하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델리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호텔은 막상 들어가 보니 사진과 전혀 다른 곳이었고 밤이 되어서는 싸움이 난 것인지 한바탕 소란이 있어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둘째 날이 돼서야 사람들이 보이고 숨이 쉬어지는 듯했다. 여행자의 거리 파하르간지는 정말 시끄럽고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유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보이고 이상하게 여자는 거의 보이지 않고 죄다 남자였다. 바닥에 앉아있거나 반쯤 누워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쓰레기들은 쌓여있거나 모아서 태워져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도무지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혼란과 무질서로 가득하게 느껴졌다.
꼬불꼬불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어 한인식당에 도착해서야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았다. 옥상에 위치한 식당에서 인도의 전통차 짜이를 한잔 마시며 번잡한 파하르간지를 내려다보니 내가 정말 인도에 왔구나 싶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달래며 길거리에 펼쳐진 색색깔의 기념품, 전통 의상을 구경하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떠나기 전까지 걱정도 많았고 두려움도 컸다. 인도는 무서운 나라였다. 하지만 발을 내디뎠고 어느새 눈을 떠보니 델리에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용기 내지 않았다면 평생 이 공기와 풍경, 사람들은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았겠지. 앞으로의 인도 여행에서 얼마나 주옥같은 추억들과 전율이 내 삶의 장면들을 채울게 될지 기대가 된다. 인도는 이제 무서운 나라가 아니었다. 뭐든 용기 있게 해보고 싶다. 그렇게 서투른 걸음을 옮기다 보면 믿기지 않는 장소에 있는 나를 또 만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