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보낸 첫날이 인도에서 겪은 1차 멘붕이었다면 라즈가르까지 가는 길은 인도에서 겪은 멘붕 2탄이었다. 라즈가르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그곳에서 2주 동안 봉사활동을 하기로 계획했다. 현지 NGO를 통해 워크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숙박을 제공받는 대신 현지에서 필요한 일을 돕는 것인데 프로그램에 따라 약간의 진행비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짧은 여행에서 현지 사람들의 생활과 일상을 함께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특히 인도는 여자 혼자 여행하기는 위험한 나라기 때문에 워크캠프가 현지 문화나 분위기에 익숙해지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우선 델리에서 깔까까지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갔다. 난 이곳이 최종 목적지인 줄 알았다. 엄청난 오산이었다. 깔까에서 우리를 라즈가르까지 안내해 줄 관계자를 만났다. 인도 NGO에서 일하고 있는 넉살 좋은 아저씨였다. 그때 까지만 해도 라즈가르까지 가는 길이 그런 고난의 행군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버스 타고 좀 만 더 가면 돼~”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아저씨를 믿었건만......
버스는 엄청나게 좁고 험난한 길을 거침없이 달려댔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비포장도로인 탓에 덜컹거림은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무참히 덜컹거리는 버스에다가 빠른 박자에 높은 소리들이 엉킨 인도 음악이 더해져 멀미를 넘어서 혼이 나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버스 안은 앉은 사람은 물론 서있는 사람까지 압축 팩에 밀어 넣은 것처럼 꽉 차 있었다. 잠시 정차하는가 싶더니 바로 다음 차가 왔다며 다시 타라고 한다. 휴게소 비슷한 것도 없었다. 이것이 인도 스타일인가. 봉사활동은커녕 가는 길이 이리도 험난할 줄이야. 배를 타고서도 느끼지 못했던 멀미에 창밖으로 언제든 구토할 준비를 해야만 했다.(실제로 며칠 뒤 그렇게 토하는 인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멀미약이 없냐고 물으니 누군가 작은 사탕을 건네주었다. 멀미약의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의지할 거라곤 그 작은 사탕뿐이었기에 간절하게 입에 물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좀 나아지는 듯했다. 나중에 그 사탕은 내 목감기와 두통 등 다양한 질환에 만병통치약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렇게 혼을 빼놓는 몇 시간의 질주 끝에 어둑어둑 밤이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2주 동안 생활할 라즈가르의 한 가정집이었다. 집안을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생전 처음 접하는 분위기 었다. 시멘트로 바른 바닥과 벽은 거칠어 보이기도 했지만 민트색으로 정성껏 칠해져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두 개의 큰 침대와 안쪽에 있는 방까지 워크캠프를 위해 모인 6명이 한 층을 사용하기로 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다른 식구의 집에서 한 가족이 되어 2주 동안 생활할 생각에 설렜다. 한국의 아파트, 따뜻한 내 방과는 분명 천지차이지만 얼른 정을 붙이고 싶었다. 아직 몇몇의 일본 친구들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 험난한 길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달려오고 있다니 다시 한번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날 밤은 그렇게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몸을 녹였다. 힘들게 도착해서인지 소박한 모닥불이 어느 때보다 감사히 느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