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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4. 2016

카탈루냐의 눈물을 아시나요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벌어들이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다른 지역을 둘러보다가 바르셀로나에 오게 되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일단 언어가 다르다. 이 지역에는 스페인어보다는 오히려 불어에 가까운 까딸란이라는 언어가 따로 존재한다. 겨우 낯선 스페인 어휘를 몇 개 익혔는데, 바르셀로나 지하철에는 또다시 생소한 표현들이 보인다. 문법은 비슷하지만 발음과 단어가 모두 달라 스페인어(카스티아어)와 카탈란을 사용 시 서로 소통이 안될 만큼 엄연히 다르다. 깃발도 따로 있다. 스페인 국기 말고도 이 지역을 상징하는 빨간 줄과 노란 줄의 상징기가 존재한다. 

  고유의 언어와 깃발을 가진 카탈루니아, 즉 바르셀로나는 이처럼 스페인과의 정체성이 뚜렷이 구분되는 곳이다. 무엇보다 카탈루니아 사람들 스스로도 스페인의 국민이 아니라 ‘카탈루니아인’으로 불리길 원하며 독립을 추진해왔다. 이들은 어쩌다 스페인이 되었고, 왜 스페인과 구분되기를 그토록 원하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스페인인 것일까?

  15세기 스페인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700여 년의 이슬람 지배 끝에 기독교 진영이 승리했을 때 이베리아 반도는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카탈루냐 등 여러 기독교 왕국들로 분리되어 있었다. 왕족의 결혼으로 통일을 이룬 스페인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면서 유럽 최대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시기에 들어서며 비로소 지금과 같은 근대국가로서의 스페인에 가까운 모습이 형성된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왕위 계승 전쟁과 주변국의 내정간섭으로 스페인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카탈로니아 인들이 현재와 같이 스페인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1936년부터 1975년까지 39년 동안 이어진 프랑코 독재정권이 카탈로니아 지역을 심각하게 차별했기 때문이다. 보수우익세력의 지원을 받았던 프랑코 장군은 반란을 일으키며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잔, 이른바 스페인 내전을 일으켰고(1936-1939), 공포, 독재정치를 펼치며 자유민주주의를 억압했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스페인과 다른 문화와 가치관으로 갈등을 겪어왔던 카탈로니아 지역을 극심하게 탄압했다. 고유 언어 사용이 금지되고,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폭력이 무자비하게 자행되었다.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 유일한 저항 수단은 바로 FC바르셀로나였다. 프랑코가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마드리드의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승리는 프랑코 군부독재에 대한 승리와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빨간 줄과 파란 줄무늬로 되어있는 FC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은 카탈로니아의 깃발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국기로 여겨졌고, 그렇기에 어떤 상업 광고도 새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마 아무 생각 없이 마드리드에 들렀다가 산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바르셀로나 시내를 누빈다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될지 모른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3년 만에 진압된다. 전 세계 진보적 지성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우면서 카탈로니아는 세계의 저항과 해방의 상징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이때 쓰인 것이다. 

  1936년 7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 두 진영의 복잡한 구성 내용은 당시 유럽의 정치적 혼란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공화파에는 공화주의자들 외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카탈로니아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이 뒤섞여 있었고, 그 반대편 국가주의 진영에는 반란을 일으킨 군 장교들을 포함한 민족주의자들 외에 보수주의자, 왕정주의자, 그리고 민병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도 대다수의 카탈로니아 주민들은 탄압으로 얼룩진 슬픈 역사에 분노하며 자신들의 자치권이 보장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카탈로니아 인들이 독립을 주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문화, 역사, 언어에 대한 남다른 자긍심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국내 총 생산 20%를 담당하는 가장 부유한 주인만큼 다른 스페인 지역의 경기의 악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현실적인 분석도 무시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스페인 정부 역시 카탈루냐의 독립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만큼, 이 지역이 분리, 독립 시 FC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로니아 축구팀의 경제적 손실과 위상 역시 난감한 문제이다.  

  맛있는 음식과 플라멩코, 가우디와 피카소, 해변과 멋진 경치와 같은 풍부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이 우리를 즐겁게만 해주는 관광대국 스페인. 하지만 이곳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가슴 아픈 싸움이 있었고, 상처를 받은 이들이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 들른다면 한 번쯤 국가와 민족, 이념과 사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의 한가운데서 그것들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스페인 사회는 어떠했고, 우리는 어떠한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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