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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4. 2016

파리, 관광하기와 여행하기

  고등학교 때 파리에 관광을 온 적이 있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친구들과 다 함께 에펠탑에 올랐고, 루브르 박물관에 들렀다가 몽마르트 언덕에도 가보았다. 그때는 낭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도시가 생각보다 냄새가 많이 난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인상이 없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프랑스라는 사회를 접하고 알게 되면서 프랑스를 향한 나의 로망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커졌다. 시작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홍세화 선생님의 책이었다. 프랑스인들의 관용 문화, 혁명과 시민사회, 결혼과 연애에 대한 남다른 철학 등 그들이 사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이 모두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파리는 나에게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세상이 발현된 곳처럼 느껴졌다.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그들의 다른 삶, 일상이 궁금했다. 죽기 전에 프랑스에서 살아보는 것이 내 꿈이었다. 5일의 여행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유보해 놓은 꿈을 잠시나마 충족시켜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공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생전 처음 와보는 곳에 내렸다. 큰 캐리어를 낑낑대고 이고 지고 역을 빠져나와 창밖을 내다보았다. 에펠탑에서 한 두 정거장 떨어진 dupleix역, 5일 동안 오가며 금세 익숙해져 버렸다. 이렇게 한 도시, 한 도시에 머물며 여행을 하다 보면 단 몇일만에 주변에 익숙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렇게 지구 곳곳에 나의 추억이 묻어있는 골목골목이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다. 한번 왔다간 곳을 다시 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다시 이 골목에 와보고 싶다. 이 근처 스시 집, 붉은색 인테리어의 카페, 세탁소는 없어진다 해도 잠시나마 파리에서 보냈던 일상과도 같았던 소소한 시간들은 마음속에 남아있을 테니까. 

  파리처럼 작은 공간에 알차게 꽉꽉 들어찬 관광지가 있을까. 이층 버스를 타고 빠리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며 든 생각이다. 수많은 공연장, 박물관과 미술관, 카페와 백화점, 각각의 장소에 숨어있는 에피소드와 비하인드 스토리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에 모였고, 파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에펠탑과 센 강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이지만 다시 찾은 빠리에는 고등학교 땐 보이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파리의 구석구석이 다가왔다. 

에펠탑과 세느강-파리 하면 첫번째 떠오르는 것들

 

셰익스피어컴퍼니 


  제일 좋았던 곳 중 하나는 프랑스 한복판의 영미문학 서점, 셰익스피어 컴퍼니였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 중 두 번째인 비포선쎗에서 남자 주인공 에단 호크가 출판기념회를 하는 장소로 등장했다고 한다.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2층짜리 서점은 그 분위기 만으로도 충분히 인상 깊지만 이 서점에 담긴 사연은 이곳을 더욱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이 서점은 한 영국인이 남미 여행을 하던 중 남미 사람들의 조건 없는 호의에 감명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역시도 파리를 찾은 전 세계의 작가 지망생들에게 하루, 이틀 무료 숙박을 제공함으로써 이 서점을 선의와 열정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었다. 서점 곳곳에는 잠시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에는 이곳을 찾은 문학청년들, 관광객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This was Christopher's bed’처럼 귀여운 문구도 보이고, ‘My nationality is , My religion is Humanity’처럼 굳은 신념과 철학이 담긴 글이 마음을 숙연하게 하기도 한다. 

  한산한 일요일 오전 혼자 서점을 찾았다. 그 어떤 관광지보다도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좁은 공간에 놓인 타자기를 두드려 보기도 하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를 바라보기도 했다. 햇살을 맞으며 졸린 듯한 눈을 하고 있는 하얀 고양이가 정말 사랑스럽게 앉아있었다. 셀카도 함께 찍어주며 내 외로움을 달래주었는데, 한국에 와서 이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마음 아픈 소식을 들었다. 지금 셰익스피어 서점은 관광명소가 되어 작가 지망생들이 하룻밤 묵기는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파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풀었던 서점 주인의 선한 마음을 더 널리 전하고 있다. 책방뿐 아니라 깜짝 음악연주회가 벌어지기도 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지난날 한 청년의 남미 여행이 셰익스피어 컴퍼니를 만든 것처럼, 나 역시도 오늘 파리 여행에서 셰익스피어 컴퍼니를 만난 것이 또 다른 아름다운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셰익스피어컴퍼니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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