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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5. 2016

반항아 열전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사람들

  파리에는 정말 세계적인 규모의 박물관부터 아기자기한 미술관까지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널려있다. 짧은 일정이라면 자신이 평소 좋아했던 그림이나 작품을 보기 위해 동선을 잘 짜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선택과 집중을 한다 해도 어느 곳도 놓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프랑스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의 세계를 보여준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내게는 그랬다. 어떤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미션을 수행하듯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모네의 작품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한 피카 뮤지움과 에스파스 달리까지 부지런히 찾아갔다. 며칠 만에 때려 넣듯이 한 시대 서양미술의 정수를 감상한 탓에 소화불량에 걸릴 법도 했지만 그 보다는 행복감이 컸다. 한국에 와서도 몇 개월 동안은 미술 전시에 가지 않아도 배부를 만큼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보았던 그림들의 잔상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규모가 큰 두 곳,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중에서는 단연 오르세 미술관이 더 마음에 들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이름처럼 미술작품뿐 아니라 온갖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온 수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반나절도 안 되는 방문으로는 겉핡기조차 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편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파 미술관에 전시하던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인상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어 일명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상주의 작품들은 전체 미술사를 통틀어 일반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세의 그림들처럼 틀에 박혀있지 않으면서도, 현대작품들처럼 난해하지도 않아 일반인들에게 가장 편안한 미학적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마치 살아있는 미술 교과서 같다. 평소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유명 작품들이 한 데 모여 있어 감상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미술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는 아는 작품을 실제로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큰 것은 없을 것이다. 밀레의 이삭 줍기, 만종,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피리 부는 소년,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등 한 번쯤 스치면서라도 보았을 유명한 작품은 죄다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마네-풀밭위의 점심식사
밀레-만종

  일반적으로 인상주의를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본다고 한다. 빛에 따라 화가의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당시에는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던 것이다. 마치 사진처럼 정확하게 묘사하고, 신이나 귀족만을 그리던 당대에서 벗어나 일상의 풍경을 거친 붓 터치로 눈에 보이는 대로 옮겨놓았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확실히 이단아였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인상주의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이 좋다. 지금 쇼킹한 현대미술 작품들에 견주어보면 지극히 무난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은 최초의 반항아들이었던 셈이니 말이다. 

드가-발레하는 소녀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는 너무 많고, 그들의 작품은 비슷한 듯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발레 하는 소녀들을 아름답게 그려낸 드가, 여성적인 색채가 은은한 르누아르, 예술계의 판도를 바꾼 남자라 칭송받는 세잔 등 모든 그림이 주옥같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고흐와 고갱을 좋아한다. 고흐와 고갱은 실제로 가까운 친구였고, 함께 살기도 했다고 한다. 둘의 그림은 거칠면서도 색감이 강하고, 한번 보면 잘 잊히지 않는 강렬한 열정 같은 것이 느껴져서 참 좋다. 고흐와 고갱은 분명 코드는 조금 달랐지만 둘 다 범상치 않았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고흐는 평소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고민하며 종교적인 삶을 살았던데 비해 고갱은 완전한 자유를 찾아 아프리카로 건너가 실제로도 방탕하게 살았다고 하니 다른 성격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빈털터리에 예민한 천재였던 고흐나 방탕한 애주가였던 고갱이나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불태운 예술가로서의 열정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두 사람의 다른 성향은 그들의 그림에서도 드러난다. 거친 붓놀림 속에서도 소박하면서도 정돈된 느낌이 드는 고흐의 그림과 달리 고갱의 그림은 원초적이고 자유분방하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자화상, 고흐의 방등 이제는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가 되어버린 고흐의 그림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한편 타이티의 여인들을 비롯한 고갱의 그림을 보면 꼭 남태평양의 섬에서 원주민 여성들을 관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고갱이 보이는 것 같다. 음란한 그림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을 만끽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을 개인적으로는 나무라기보단 지지해주고 싶다.          

고흐의 자화상

  

고갱의 작품

  또 다른 인상주의의 대표화가 모네의 작품은 아예 한 미술관을 통째로 점령하고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애초에 모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미술관이다. “작품은 시민에게 일반 공개할 것. 장식이 없는 하얀 공간을 통해 전시실로 입장할 수 있게 하고 작품은 자연광 아래에서 감상하게 할 것”이라는 조건을 모네가 직접 제시했다고 한다. 그의 요구대로 오랑주리 미술관에 들어서면 하얀 벽에 거대하게 펼쳐진 모네의 작품을 자연광 아래서 감상할 수 있다. 인적이 드문 날이면 혼자 그림 앞에 앉아 정말 연못에서 수련을 바라보는 듯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작품-벽을 따라 넓게 둘러진 그림

  이후 이어진 현대미술의 역사도 이어지는 반항아 열전이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미술이 계속에서 완벽을 추구해갔던 것이라면 인상주의 이후 현대미술은 누가 누가 더 자기 멋대로이며 그것을 새롭게 의미화하느냐가 발전의 길이었던 것이다.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 달리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은 예술의 정의 자체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지며 사람들에게 충격과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시간은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이들의 자의식과 뻔뻔함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외로웠을, 하지만 묘하게 쾌감을 느끼기도 했을 그들의 예술세계를 만나는 것은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한 시간이다.  

  인상주의 이후 입체파로 분류되는 피카소의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다양한 측면에서 보이는 장면들을 하나의 평면에 펼쳐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고정관념을 깬 그의 그림은 다소 괴상해 보이지만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그 주제가 훨씬 깊이 있게 와 닿는 것 같기도 하다. 바르셀로나에서도 피카소 박물관 앞까지 갔다가 들어가지 못했기에 파리에서는 거듭 개관시간을 확인하고 피카소 박물관으로 향했다. 파리에 있는 피카소 박물관은 세계 각지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 가운데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체계적인 컬렉션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피카소의 작품

   역시 피카소의 작품이라면 한 번쯤 작품 앞에서 제목과 작품을 번갈아가며 피카소의 의중을 상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게 뭘까...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한국전쟁을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었다. 미술책에서나 보던 그림인데 실제로 보니 크기가 꽤 컸다. 미술관의 한 벽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이 작품이 이곳에 있는지 몰랐는데 마주치자마자 여기까지 온 보람이 느껴졌다. 많은 외국인들이 그림 앞에서 한동안 머물며 피카소가 그려낸 전쟁의 잔인함과 무자비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임신한 채 배가 부른 여성들이 자신을 겨눈 총앞에 나체로 서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도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벌어졌을 전쟁의 무자비함과 잔혹함에 대해 잠시 성찰해 보았다. 이 그림 앞에서 예술가는 항상 사회 속에 존재하며, 예술은 정치적 투쟁의 무기라고 했던 피카소의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을 보고 있는 사람들

              

               어떻게 예술가가 다른 사람들의 일에 무관할 수 있습니까? 회화는 아파트나 치장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화는 적과 싸우며 공격과 방어를 행하는 하나의 무기입니다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반항아들을 찾아 떠난 미술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곳은 몽마르뜨언덕에 위치한 에스파스 달리였다. 피카소보다도 나아가 달리의 화풍에는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내는 초현실주의. 이성, 논리, 규칙, 규제를 비롯한 모든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파괴하는 다다이즘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뭔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절망과 중력과 함께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기분이 동시에 느껴진다. 내가 묵었던 스페인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이런 말이 있었다. “I Am not Strange, I am just not normal.” 이상한 게 아니라 다만 평범하지 않을 뿐이라는 그의 말이 괜히 통쾌하게 느껴졌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비정상을 만들어내고 단죄하는 이들이야 말로, 정상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함이 침해당하는 것이 두려운 겁쟁이일지도 모른다.

 정말 작은 박물관이어서 결혼식과 개인 파티를 위해서 임대할 수도 있다는 달리의 미술관에는 그의 이러한 과감하고 반항적인 느낌이 곳곳에 묻어난다. 커다란 바닷가재가 수화기인 전화기부터 녹아내리는 시계들, 자극적인 입술 모양의 조형물, 그리고 벽에 새겨진 그의 로맨틱한 명언들까지 달리에게 사로잡힌 기분이 들었다.

  

  유럽 각지에서 파리로 모여 일생을 아름다움과 예술, 삶,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사람들. 그들의 작품을 만나는 시간은 단순히 교과서에 있는 그림을 한번 실제로 보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했던 인류의 흔적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그들을 만난 수는 없겠지만 작품 속에는 그들의 삶, 인생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래서 반가웠고, 그래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초현실주의는 파괴적이지만, 우리의 시야를 제한하는 속박이라고 간주하는 것만을 파괴한다.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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