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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5. 2016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를 찾아서

레뒤마고와 몽파르나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날은 파리를 찾은 이유이자 목적이기도 했던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를 만나는 것으로 하루를 오롯이 바치기로 했다. 사랑을 알게 되고, 진정한 사랑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에 우연처럼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똑똑한 커플이 아닐까. 1929년 철학과 교수 자격시험에서 나란히 수석과 차석으로 합격한 이후 평생을 지적 동반자이자, 정치투쟁의 동지, 사랑하는 연인으로 실험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1931년 그들은 계약 연예를 하기로 다짐한다. 서로의 생활의 자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유까지도 보장하면서 함께한다는 것이 계약결혼의 핵심이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적 이끌림일까, 한 인간에 대한 존중과 희생일까, 일상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여건일까.... 사랑이 무엇이든 그것은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때로 그 마음은 시간에 따라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그 크기가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감정과 상황들이 포진해있다. 때로 사랑에 대한 절대적 진리처럼 보이는 규범들은 그 섬세한 교감을 재단하고 단죄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또 사랑한다면 그것은 잘못일까?’,‘사랑이라는 아름답고 숭고한 일은 꼭 독점적이어야 할까?’, ‘왜 질투하고, 왜 상처받는가?’ 사랑에 대한 이런 여러 가지 고민과 질문이 그들을 계약결혼이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로 이끌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그들에게는 달랐다. 한 번뿐인 인생을 치열한 투쟁이자 질문, 인간으로서의 도전이자 실험으로 보았던 이들이었다. 연애와 사랑, 결혼에 대한 모든 금기와 규범을 넘어선 새로운 시도가 그들에게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떤 괴로움과 두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자신들의 인생을 자유와 실천으로 채운 것이다. 그렇게 살고 그 삶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지식인의 삶이자 의무라 생각했던 이들이었다.

  대학시절 그들의 사랑을 구구절절 담아놓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쿨하고 자유로울 것 만 같았던 그들의 계약결혼은 상상과 달랐다. 서로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했으며 미저리 같이 울고 매달리는 시간들도 계속됐다. 계약결혼이 위태로운 순간들도 많았다. 그 모습은 위대한 철학자의 실험적 연애라기보다는 바람피운 남자 친구 탓에 괴로워하는 친구의 고민과 거의 흡사했다. 관계는 훨씬 복잡했다. 각자 다른 사람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한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었고 동성애적인 관계도 있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 속에서 꽤 심각하게 영향력을 가졌던 사람도 있고, 가볍게 스쳐간 인연들도 있었다. 현재 우리의 복잡한 일상, 사랑과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들도 이 사회 속에 살아가는,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갈등과 괴로움 속에서도 그들은 기존의 인식과 사고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질문했다. 그리고 숨기지 않았고 모두 공개했다.         

  그런 삶이 멋있었다. 나와 아주 가까운 시대도, 공간도 아니었지만 인간으로서 그들이 살다 간 용기 있는 삶의 자취가 나에게도 힘이 되었다. 주류적인 인식과 가치에 의문을 들 때,  ‘나만 이런 걸까’, ‘내가 잘못된 걸까’ 자책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어준 우상이었다. 언젠가는 그들이 살았던 곳, 머물렀던 카페, 그들이 잠들어 있는 터까지 내가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그들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은 거기에 없더라도 그곳에서 그들이 말하고 괴로워하고 생각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싶었다.  

카페 레뒤마고

    파리에 도착한 첫날 레뒤마고라는 카페에 갔다. 레뒤마고라는 카페의 이름은 두 명의 중국 인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벽에는 커다란 중국 인형 두 개가 떡 붙어 있다. 프랑스 문화는 카페에서 시작되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페는 토론과 대화의 장이었다. 레뒤마고는 맞은편에 위치한 카페 드 플로르와 함께 20세기 초 문학과 예술, 사상을 풍요롭게 꽃 피운 곳으로 유명하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뿐 아니라 피카소, 카뮈, 에디트 피아브, 롤랑 바르트 등 당대 최고의 철학자, 예술가들이 모여 실존주의 문학과 예술에 대해 논하던 곳이라고 한다. 사르트르는 “우리 집은 카페 드 플로르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침 9시부터 저녁식사 이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외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카페를 사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부담 없는 금액으로 식사와 함께 편안한 공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겨울이 되면 집을 난방할 돈이 없어 따뜻한 카페로 몰렸던 것이다. 카페의 낭만 한편에 예술가들의 가난한 현실이 배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은 가난했나 보다.

    1884년에 문을 연 이후 130여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 우리나라에도 100년이 넘은 주막, 공연장, 식당 등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의 숨결을 기억하고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변함없이 남아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니 말이다. 이렇게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해버리는 세상에서는 변화하는 것만큼이나 변치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생각한다.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한잔 주문했다. 찻잔과 냅킨, 설탕이 담긴 봉지까지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심각한 얘기도 하고, 새로운 발견에 기뻐하기도 했을 그들을 상상해본다.

레뒤마고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파리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를 찾았다. 일요일이라 한적한 공동묘지는 죽음의 슬픔보다는 삶을 정리한 사람들의 초연함이 느껴지는 평화로운 공원에 가까웠다. 이곳에 잠든 사람들의 명단을 훑어보았다. 사르트르와 보브아르 말고도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뉴요커였지만 이곳에 잠들기를 원했던 수잔 손택 등 이방인들의 이름도 보인다. 수많은 유명인사들 가운데서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무덤은 1번, 공동묘지 입구 쪽에 가장 찾기 쉽게 위치해있다. 세상을 떠나서도 이 무덤의 인기 인사이기 때문일까.

한적한 일요일 오전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생각을 정리하며 산책하기에도 좋다

  

드라큘라가 나올 것 같은 서양식 무덤

 그들의 묘지를 발견하고 난 뒤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엄숙하고 칙칙한 무덤들 사이로 환하게 빛나는 분홍빛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잠든 곳에 참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세기의 사랑꾼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지지와 사랑을 보여주듯 그들의 무덤에는 사랑스러운 입술 자욱과 꽃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서로 사랑하고, 세상에 도전한 두 사람.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1번-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묘

  사랑은 무엇으로 완성될까? 어떠한 약속도, 법적 구속도 사랑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 역시 삶의 과정이고 사랑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무덤 주변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서로를 원망했던, 상처 주었던 시간들도 사랑의 한 부분으로 존재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완벽하고 예쁘지 만은 않게, 마지막 순간까지 서툴고 어설프게 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 앞에, 사랑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 말이다.  그렇게 사랑은 때로 두렵고, 큰 아픔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지금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기쁨과 행복을 줄 것이다. 진심을 다해 상대를 위하고 최선을 다하며 자유롭고 용감하게 평생을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그들의 앞에서 감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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