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로마를 찾은 사람들은 꼭 바티칸 시국을 찾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바티칸 박물관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을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을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며 이곳을 방문한다. 로마 시내의 유적을 둘러보는 것이 2-3세기 고대 로마인들을 만나는 시간이라면 이 바티칸박물관에서는 15-16세기 르네상스의 거장을 만나게 된다. 아무 생각없이 로마를 둘러보면 모두 ‘옛날에 있었던 일’로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이 두 시기는 무려 1000년이 넘는 시간 차이를 갖는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계속 고대의 로마와 중세의 로마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도 큰 재미다. 로마를 포함한 유럽여행은 오기 전 서양사나 서양미술사와 같은 역사적 맥락을 공부하고 온다면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나도 여행을 떠나기 전 <서양미술사>라는 대학의 교양강의를 청강했다. 이 장에서는 내가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내가 바티칸 미술관에서,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보았던 작품들의 흐름을 짚어볼까 한다.
콜로세움이나 포로로마노 같은 로마 중심지의 유적들은 고대 로마의 것이다. 기원전 6-8세기 경 로마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왕국들로부터 고대 로마가 시작되었다. 로마는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로마 이전의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10세기에서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기 전인 1세기까지를 말한다. 민주주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그리스 신화 등이 이 시기의 것들로 향후 서양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고대 그리스, 로마란 바로 도시국가로 구성되었던 1세기 이전 그리스 지역과 현재 터키를 포함한 소아시아 지역과 스페인일대를 포함한 서유럽을 모두 장악했던 로마제국을 묶어 일컫는 것이다.
이후 1000여년의 중세가 이어진다.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면서 이 시기의 유럽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 유럽전역에 어딜가나 볼 수 있는 높게 세워진 성당이 그 시기에 줄기차게 만들어진 것들이다. 실제로 성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고대의 건축물인 콜로세움이나 포로로마노의 벽돌 상당수가 뜯겨나갔다. 지금 우리에게는 엄청난 유적이지만 중세인들이 보기에는 신을 위한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웅장한 골치덩어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15-16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르네상스”시기가 도래한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여유가 생긴 당시 유럽인들은 신이 아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2-3세기 당시 인간을 최우선으로 했던 고대를 그리는 시기를 맞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와 르네상스는 아무 생각없이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얼핏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천년의 시간간격을 두고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한 전혀 다른 두 시대인 것이다. 로마와 바티칸 박물관은 몇 세기에 걸친 서양문명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엄청난 장소인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만날 수 있는 회화관에 들어서면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의 특징을 볼 수 있다. 11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암흑시대라 불리는 중세중기의 그림들은 대부분 기독교를 주제로 한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묘사보다는 다소 투박하고 색채역시 어둡다. 회화의 아름다움 보다는 종교적 목적에 주를 두고 있기 때문에 동물이나 손모양등 상징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금박을 입힌 것들도 많다.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든 자세는 축복을 내리는 자세이며, 천사는 마태, 독수리는 요한, 사자는 마가, 소는 누가, 후광은 성스러운 인물을 상징한다. 이런 소소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좀더 그림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이런 그림들이 14세기 이후 르네상스의 창지자로 불리우는 지오토를 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전히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이 많지만 재미있으면서 사실적인 묘사들이 등장한다. 금박도 하나 둘씩 벗겨지고, 색감은 화려해졌으며, 살아 움직이듯 입체적인 표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그림의 변화에는 도시가 발달하며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교회봉건영주의 권력이 약화되며 미술의 중심이 교회가 아닌 세속사회로 이동하였던 사회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후 15-16세기 르네상스가 전성기에 이르면서 신 중심의 중세적 가치체계에서 탈피해 인간성의 해방,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재발견하자는 인문주의가 등장한다. 인간을 둘러싼 물질세계와 자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재발견과 향수, 이상화가 이루어진다. 이 때 활동했던 거장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인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작품인 라오콘 상,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인 최후의 심판등은 모두 이때의 작품이다.
르네상스의 후기 16세기 후반 종교개혁이 일어나며 서양미술은 또 한번의 격변을 맞게된다. 구교, 신교의 갈등 속에서 종교미술은 쇠퇴하며 초상화나 풍경화등 비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미술이 발달하게 된다. 이후 17세기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의 바로크 미술 (구교권, 스페인, 프랑스, 이태리),가볍고 우아한 장식을 중심으로 파리에서 유행했던 로코코양식, 이베 대한 반발로 등장한 신고전주의, 18세기 자유분방하고 비형식적인 분위기를 특징으로하는 낭만주의, 아카데미시즘과 사실주의, 인상주의등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런 흐름을 보면 예술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정반합을 찾아가며 그 시대의 사회상과 사람들과 긴밀히 맞닿아 변화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정말 많은 성당, 미술관, 박물관을 다니며 수많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모든 작품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기는 쉽지 않지만 본인이 여행한 유럽 국가의 작품들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어보는 것도 유럽여행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다. 나의 경우 스페인-파리-이탈리아 순으로 여행했기 때문에 거꾸로 하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가우디, 피카소, 달리와 같은 현대의 예술가들 고흐, 고갱, 세잔으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화가들 그리고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의 천재들인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마지막으로 10세기경 서양문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고대 로마문화의 흔적들까지.
이 시간을 돌아오면서 내가 서있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문화와 예술은 점진적으로 발달한 것도 아니고, 후퇴했다고도 말 할 수 없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합의한 대로 세상도 변하고 예술도 달라졌다. 천재의 의미도 달라진다. 사람을 사람보다 아름답고 완벽한 비율로 조각하는 것이 천재로 여겨지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사진처럼 똑같이 묘사하는 능력이 높게 평가받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다 그것을 모두 파괴하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비웃는 이들이 천재가 되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