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에서 르네상스 3대 거장의 작품을 모두 만날 수 있지만 단연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을 꼽으라면 미켈란젤로일 것이다. 3대 거장 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자에 가까웠고, 라파엘로는 젊고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천재성을 가진 화가였다면, 미켈란젤로는 종교인에 더욱 가까웠다고 한다. 작은 키에 볼품없는 외모를 가졌다고 전해지는 미켈란젤로는 무엇보다 작품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미켈란젤로는 본래 화가이기보다는 조각가였다. 그의 3대 조각 작품이 피에타와 다비드, 모세상이다. 피에타는 바티칸에 있고, 다비드상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으며 모세상은 로마에 있다.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돌을 보면 그 안에 사람이 있어 꺼내 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는 돌에 어떤 스케치도 하지 않고 정말 돌에 갇혀있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꺼내듯 팔 끝부터, 발등부터 인체 어느 부분에서 부터라도 자유롭게 조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 계기가 있다. 1508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위촉받은 미켈란젤로는 처음 거절했다고 한다. 본인은 조각가이고, 벽화 경험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면 다시는 조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에 그는 조각을 하기 위해 천정화에 착수한다. 모두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조각을 하기 위해 하루 17시간 반 동안 극소수의 인력만을 동원해 홀로 외로운 작업을 이어갔다. 5년이 넘는 작업 끝에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완성했고, 사람들은 공개된 그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림은 마치 조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 생동감 넘치고 음영이 분명했었던 것이다. 조각가인 자신의 특기를 살려 모두가 예상치 못한 그림을 그려냈다. 남성과 여성의 몸을 섞어 아름다운 하나님의 몸을 표현하는 등 개성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인 조각을 하기 위해 억지로 떠맡게 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던 미켈란젤로, 작업을 마치고 나오는 그의 모습은 37살임에도 불구 60대 노인의 몸과도 같았다고 한다. 2년간의 재활치료를 마치고 그토록 원하던 조각을 할 수 있게 된 미켈란젤로는 모세상을 조각하게 된다.
이후 60세가 된 해에 그는 다시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는데, 이 작품이 바로 ‘최후의 심판’이다. 천장화를 그린 지 20여 년 만에 이번엔 천장이 아닌 벽면을 채울 벽화를 요청받은 것이다. 이 시기는 성당이 면죄부를 판매하며 부패할 대로 부패한 시대였다. 신을 사랑했던 미켈란젤로는 현재의 세태에 대한 자신의 강력한 비판 의지를 담아 파격적인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예수님을 포함한 모든 인물을 나체로 그렸으며, 천사에도 날개를 그리지 않았고, 권위의 상징인 예수님의 수염 역시 보이지 않았다. 성모 마리아 역시 신성하다기보다는 교태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했다. 낯선 그림에 당황하며 신성모독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에게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욕하지 말라. 네가 먼저 변화하면 그림이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 벽화에는 미켈란젤로가 죽은 뒤 제자가 수정해 옷이 입혀져 있다.
그의 세계관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발가벗은 사람들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 앞에 그 어떤 가식과 오만도 벗은 진정한 내려놓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포기하지 않는 신념과 독창성,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 고독함과 외로움이 느껴져서 뭉클하고 감격스러웠다. 저녁 8시가 넘어 로마 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 핀치오 언덕에 올라 생각했다. 한국에 간다면 외로운 길이라도 나도 신념을 지키며 포기하지 않고, 돈, 명예, 부가 아닌 나 자신의 존재의 가치, 그 무언가를 위해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걸고 전념하는 시간을 살아갈 준비를 여기서 해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