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마지막 하루는 혼자 로마 시내를 두발로 천천히 돌아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판테온 같은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를 살펴보며 기원전 1세기부터 500여 년 동안(395년 동서 로마의 분할,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멸망) 어마어마한 영토를 아우르며 대제국을 이루며 살아갔던 고대인들의 삶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만지고 있는 이 벽이 1500여 년 전에도 이 자리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아마 로마인들도 지금 이렇게 콜로세움 주변을 달리는 버스와 자동차들, 늘어선 관광객과 그들 손에 쥐어진 카메라를 상상할 수 조차 없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인간과 존재에 대한 한없는 겸손과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엄청난 시간 속에 순간을 스치듯 살아가는 나란 존재를 느끼게 되는 곳, 바로 로마는 그런 곳이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콜로세움, 판테온 신전을 보면 경이로움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을 만들고 이곳에서 삶을 영위해갔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얼마나 튼튼하고 견고하게 지었길래 지금 이렇게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일까. 로마시대의 건축물을 돌아보다 보면 건물 자체의 위엄에도 압도당하지만 이곳에서 삶을 영위했을 누군가의 생활상과 일상들, 세계관이 더욱 궁금해진다. 흔한 로마의 기념품 샵에서 파는 홀로그램 엽서나 투명카드 엽서들은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지금 부서지고 훼손되어 관광지가 된 콜로세움이 먼저 보인다. 살짝 각도를 비틀거나 투명필름을 덮으면 로마시대 복장을 입은 고대 로마인들이 가득 들어서 맹수와의 경기를 지켜보고, 물을 가득 채워 수중 경기가 벌어지기도 하는 과거의 콜로세움이 생생하게 보이는 식이다. 그게 참 재미있어서 나는 로마 모든 유적지에 그렇게 과거의 로마를 덧대어 보여주는 책을 아예 한 권 사들고 군데군데마다 고대 로마인들과 함께 다닌다고 상상하며 로마를 둘러보았다.
콜로세움은 말 그대로 원형경기장이다. 이미 글레디에이터와 같은 영화에서 많이 보았기에 콜로세움의 과거를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그 규모를 몸소 느끼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뻥 뚫린 지하 미로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저 안에 짐승과 검투사들이 초초하게 서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게다가 이 큰 면적에 물을 채워 수중경기까지 벌였다고 하니 요즘의 기술력으로도 쉽게 재현할 수 없을, 말 그대로 스펙터클한 경기 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로마인들은 이런 경기장을 지었던 것일까? 로마 정치가들에게 콜로세움은 단순한 오락시설 그 이상의 의미 었다.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화합을 도모할 뿐 아니라, 잔인한 경기방식은 자신들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기도 했다.
콜로세움 바로 옆에 위치한 포로로마노는 지금의 포럼이라는 말의 유래이기도 한 각종 정치 회의가 열렸던 주요 시설이 모여 있던 도시의 원형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형태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높이 솟은 기둥 몇 개, 발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돌덩이들로 고대도시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모여서 자유롭게 연설, 토론하는 장소였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요즘 성행하는 온라인 포럼의 원조격이랄까? 감회가 새로웠다.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유적지중 그 보존 형태가 가장 우수하다. 지금까지도 성당으로 끄떡없이 사용되고 있으니 어찌 보면 가장 튼튼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처음에는 다신교였던 로마의 모든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판이라는 말이 모두라는 뜻이고 테온은 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처음 만들어졌다가 한번 화재로 다 소실되었고 이후 1세기에 다시 세워졌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래도 2000년이 넘은 것이니 이래저래 대단한 건물이다. 하지만 만약 중세시대 성당으로 개축되지 않았더라면 이 판테온 역시 콜로세움처럼 성당 건축을 위해 여기저기 뜯겨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대인들은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며 포용력을 보여줬는데, 이후 중세인들은 오로지 한 가지 종교만을 엄격히 고수하며 폭력과 억압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역사라는 것이 꼭 앞으로만 가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로마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미개한 과거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나큰 통찰을 주고 있다. 로마가 북아프리카, 이집트, 지금의 터키와 영국 일부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영토를 아우르는 제국을 거느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관용 때문이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천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가 이어졌지만 유럽인들의 인간성과 정신은 향상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이어진다. 그래서 15세기에 들어서 오히려 중세 이전인 고대 그리스, 로마에 관심을 갖는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이다.
로마인들은 기독교가 없던 시대였음에도 훌륭한 정치체제를 만들었고 광대한 지역에 문명을 꽃피웠다. 로마인들은 오히려 신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성과 그 현실에 집중했다. 이들은 인간의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함을 철저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매우 현실적인 접근을 꾀했다. 이 지점이 신화와 철학을 추종했던 그리스인들과도 차별화되는 점이다. 로마인들은 맹목적인 신을 내세워 인간을 하나로 통일하려 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정복자와 피정복자로 위계화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민족, 문화, 종교의 차이를 인정했다. 민족, 종교가 다르다 해도 로마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적극적으로 포용했다. 속국 출신도 황제가 되었으며, 황제의 지위조차 출신지나 출생을 불문하고 개방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로마사에 등장한다. 2000년이 지나 오늘날의 현대국가는 어떠한가? 대영제국도, 미국도 로마 수준의 관용을 보여준 이들은 없었다. 로마인들은 인간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았다. 내부에서 실패와 잡음이 있을 때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성찰 끝에 개혁을 단행해 갔다. 그것이 로마제국 천년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그런 로마인들을 보면 사실 지금 근대국가의 굳건한 경계가 참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지구가, 우리가 하나의 큰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어떤 위계도 배제도 없이 회를 구성해가는 구성원들이 주인이며 그들의 행복을 위해 수많은 국방비와 전쟁비용을 투자한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 생각해본다. 국가라는 경계에 따라 경제력이 결정되고, 싸움을 벌이는 일은 없었을 텐데... 우리는 무슨 필요에 의해 이런 무의미한 경계를 작위적으로 만들어놓고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이슬람과 미국의 전쟁, 아프리카의 내전과 기근, 북한과 남한의 갈등까지... 국제 정세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근대국가의 모든 경계선을 지우개로 싹싹 지워버리고 싶다. 배고픔과 장애, 폭력과 전쟁에 시달리는 수없이 많은 무고한 인류를 떠올리면 정말 '뭣이 중허냐'라고 묻고 싶다. 내 맘처럼 쉽게 국경선을 지울 수 없다면 지금 있는 정부라도 좀 더 나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도 로마인들은 많은 힌트를 준다. 우리가 어떻게 다문화를 접해야 하는지, 무엇이 죽음과 멸망으로 가는 길이고 무엇이 생명과 확장으로 가는 길인지 우리는 로마인들을 보며 느낄 수 있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그렇게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한 발 한 발 걸으며 머나먼 시간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니 지코모 아저씨가 정통 이탈리아식 파스타를 요리해주셨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다른 여행자들도 모두 초대되었다. 수준급의 요리 솜씨였다. 매일같이 여행자들이 오고 가다 보면 귀찮고 일로 느껴질 법도 한데, 아저씨는 정말 이 순간들을 함께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의 맛있는 파스타 저녁 덕분에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이 더 뜻깊게 느껴졌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