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 시작해 피렌체를 지나 로마까지. 이탈리아의 핵심도시를 두루 둘러보았다. 참 배울 것도 볼 곳도 많은 도시들이었다. 마지막은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사에서 하는 이탈리아 남부 투어를 당일치기로 신청했다. 푸른 바다와 열정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득할 것만 같은 이탈리아 남부는 북부나 중부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를 만나게 해줄 것 같았다. 하루가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도 내어 꼭 가보고 싶었던 이탈리아 남부를 찾았다.
본격적인 휴양지에 도착하기에 앞서 폼페이에 들렀다. 폼페이는 어릴 때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이후부터였다. 화산 폭발로 단 하루 만에 사라져 버린 도시. 그렇게 1700여 년이나 묻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그 도시가 궁금했다. 하루 만에 굳어버렸기에 그날의 고통과 갑작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던데 그 모든 것을 꼭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어린 날의 호기심이었다. 폼페이 유적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들을 실제로 대영박물관으로 상당수 이동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던 채로 굳어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의 유적이 비어있는 터였다. 커다란 목욕탕은 지금 들어가서 목욕을 해도 될 것 같았다. 폼페이는 당시 해상무역의 근거지로 매우 발달해있던 곳이라고 하던데 그런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폼페이를 지나 아말피 해안도로를 따라 이탈리아 남부의 해양도시 포지타노에 도착했다. 포지타노! 이름도 예쁜 포지타노. 자갈돌과 모레가 멀리서 내다보아도 그대로 보일 것처럼 맑은 물에 그림처럼 예쁘게 작은 돛단배들이 떠있는 해변을 바라보니 잠시라도 남부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지타노는 레몬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레몬으로 만든 것을 찾을 수 있다. 아마 이곳의 뜨거운 햇살이 눈부시게 노오란 레몬을 어느 곳보다 탱글탱글 여물수 있게 하나보다. 레몬 사탕, 레몬 비누, 레몬주 선물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은 즉석에서 레몬 과육을 파내 얼음과 섞어 만들어주는 슬러쉬와 레몬 맥주다. 그 어떤 것도 포지타노 해변을 바라보며 이 순간 즐기는 것만은 못할 것이다. 예쁜 골목골목 레몬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 도착한 포지타노의 해변을 바라보며 레몬맥주 한잔을 들이켜고 나니 그토록 시원할 수 없고, 세상 부러운 것도 없을 것 같았다. 한 가지 부러운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해수욕을 하며 며칠이고 더 머물 계획을 가진 사람들 정도? 하지만 여행에서 조금의 아쉬움을 남겨두는 것은 항상 나쁘지 않다고 믿는 나이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마음껏 그들을 향한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주었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 돌아가는 길엔 큰 유람선에 몸을 싣고 이탈리아의 땅끝을 한 바퀴 돌아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끝없는 해안선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아마 이 노래를 한국에서 듣는다면 아마 이탈리아 남부의 바다가 생각날 것이다. 정열적이었던 태양 아래, 거칠 것 없는 바다와 바람을 맞으며 오롯이 혼자가 되어 배를 타고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던 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배 위에는 사랑하는 연인들도 보이고,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도 보인다. 그리고 나처럼 혼자 여행을 떠나온 여행자들도 있다. 누구의 것이 더 값지다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하나 소중하고 빛나는 추억이 될 것이다. 이 여름날 이탈리아의 남부 바다에서 나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휴식의 시간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어느 나라를 가나 남부는 북부지방과는 다른 특유의 느낌이 있는 것 같다. 뜨거운 태양과 맑은 하늘 아래 여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가이드하느라 고생한 언니에게 이탈리아 최고의 여행지를 물어보니 ‘시칠리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탈리아 남부에 똑떨어져 있는 작은 섬인데, 시골 같은 정과 오지랖이 넘치는 제대로 된 남부 사람들을 만나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꼭 만들어 시칠리아 섬에 와보고 싶어 졌다. 그때는 인류의 문명과 유적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은 잠시 제쳐두고 정말 사람 냄새나는 이탈리아 사람들과 어울려 사람 냄새나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