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진 Sep 25. 2016

프라하, 재즈바에서 돈 지오반니까지

예술의 도시 프라하

 여행 일정의 마지막에 체코를 넣은 것은 순전히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모두 유럽 대륙에서도 남쪽에 위치해있고, 사람들과 분위기도 정열적이고 열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런 두 나라에서 열흘씩 보낸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체코를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선선해진 날씨뿐 아니라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옷차림, 풍경도 달랐다. 특히 된소리 발음이 많은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를 듣다가 치읓이나 키읔 등 거센소리 발음이 많이 들리는 체코 말을 들으니 차가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보냈던 시간들이 잠시 시원하게 식혀지는 순간이었다. 

  프라하에 가면 꼭 하고 싶었던 것이 공연예술을 접하는 것이었다. 수준 높은 오페라, 재즈, 인형극 공연이 저렴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도착하니 정말 많은 공연이 상연 중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오늘과 내일뿐이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프라하 출신의 예술가들을 잠시 정리해보자. 먼저 음악가로는 스메타나드보르작이 있다. 스메타나는 1824년 체코의 군가를 작곡하기도 했으며, 전시에는 총을 들고 전쟁에 참여할 만큼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 모차르트가 있고, 폴란드에 쇼팽이 있다면, 체코에는 스메타나가 있다고 할 정도로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이다. 스메타나가 태어난 지 2년 뒤 탄생한 드보르작 역시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로 위모레스크, 신세계 교향곡 등을 작곡했다.

  소설가 카프카밀란 쿤데라 역시 체코 출신이다. 1883년 태어나 1924년까지 살았던 유대인 카프카는 체코 출신이긴 하지만 명성만큼 체코인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는 아니다. 어린 시절을 독일어를 사용하는 학교에 다니면서 모든 작품을 독일어로 썼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지금까지도 독일계 유태인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하루아침에 바퀴벌레로 변해 겪는 일을 그려낸 <변신>등의 작품으로 인간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힌다. 밀란 쿤데라 역시 체코 작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의미의 축제>가 냉소적이면서도 담담한 그의 소설 제목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그런 작가가 나고 자란 체코라는 곳이 더 궁금해졌다.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알폰스 무하가 있다. 프라하 곳곳에는 무하의 그림이 새겨진 기념품을 발견할 수 있다. ‘무하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준 그의 작품은 예술을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차별화되는 그만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무하의 예술세계는 순수예술에만 그치지 않고 연극과 광고 포스터, 장식 패널, 잡지 커버, 레스토랑 메뉴, 엽서, 보석, 식기, 직물 등 생활 속에까지 녹아들었다. 체코에는 자그마한 무하 박물관이 있는데 풍요로운 색감과 젊고 매혹적인 여성성을 묘사하는 그의 작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

  이렇게 예술적인 도시 프라하라서 이틀이라는 시간의 제약이 어느 때보다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한 몇 달간 머물며 모든 공연을 다 보아도 모자랄 것 같았지만 그중에서 선별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쉬웠던지 모른다. 일단 프라하에 도착한 첫날은 꼭 재즈 공연을 보리라 다짐했다. 평소에도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재즈음악을 좋아하는데 체코에서 맥주 한잔 하며 보는 재즈 공연이라니 혼자라도 전혀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재즈 공연은 정말 멋졌다. 풍성한 악기 소리의 어울림이 여행자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혼자 온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정말 멋졌던 재즈 공연, 체코 맥주와 함께라면 부러울 게 없다

  문제는 오페라와 인형극, 음악회 중에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의미 있는 공연들이었다. 먼저 시민회관에서의 음악회. 원래 개인 군사 병영으로 사용되었던 화약탑을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의미 있는 장소라 꼭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300년 된 estate극장에서의 돈 지오반니 오페라. 300년이라는 세월뿐 아니라 이곳은 모차르트가 <돈 지오반니>를 직접 지휘하며 초연한 곳으로 유명하다. 내가 프라하에 온 이 시기에 마침 <돈 지오반니>를 공연한다는 엄청난 행운+우연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돈 지오반니> 인형극! 체코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장르임이 틀림없었다. 동심으로 돌아가 작은 극장에서 정답게 공연하는 인형극을 보는 즐거움도 놓치기 아까웠다. 고민 끝에 <돈 지오반니> 인형극으로 결정했다. 가장 체코스러운 것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귀여운 소극장에서 하는 인형극
돈 지오반니 인형극-재치가 넘치는 체코사람들

  인형극은 오페라를 놓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줄만한 가치가 있었다. 물론 오페라 음악을 짧은 시간으로 편집해 틀어놓고 그 음악에 맞춰 팔다리를 엉성하게 움직이는 인형의 모습이 어설프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소극장의 강점을 살려 관객과 가까이 호흡하면서도 재치가 넘치고, 정겨운 연출 방식은 엄마 손 잡고 인형극을 보러 온 것 같은 동심을 되찾게 해 준다. 중간중간 체코 사람들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에서는 말이 안 통해도 어린아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었다. 가장 체코스러운, 체코에서만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은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인형극 한편이 제격이다. 다만 다소 어설프고 엉성한 인형과 무대에도 맘껏 웃어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은 스스로 준비해 가시길! 

희대의 바람둥이 돈 지오반니와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꿈만 같은 하루, 로마 남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