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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May 28. 2017

책상도, 지붕도 없는 학교

  내가 신청했던 워크캠프의  활동은 학교에 가서 벽화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라 그런지 어떤 날은 비가 와서, 또 어떤 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학교 문을 닫는 날이 잦았다.  실제로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만나길 기대했지만 학교가 문을 닫은 날이면 주로 나긴다르의 집에서 농사일을 돕거나 하염없이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야 했다.  그때는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멍 때리던 시간들도 참 그립다.

  교육프로그램을 신청한 만큼 모두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날 시간을 기다렸다. 한 일본인 친구는 종이 접기부터 각종 신기한 일본 장난감을 챙겨 왔고, 우리 중 현직 과학선생님이었던 분은 한국에서부터 과학 실험 도구를 한 보따리 준비해오기도 했다. 그만큼 오늘은 학교에 갈 수 있을까, 가서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나 늘 애가탈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준비한 것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2주라는 짧은 일정이다 보니 몇 가지 다른 일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학교를 방문할 수 있는 날이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우리에게 더욱 소중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방문하게 된 라즈가르의 작은 학교는 정말 아름다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붙어있는 곳이었는데 우리나라의 학교와는 딴판이었다.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빽빽이 들어찬 교실을 바라보면서 꼭 닭장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라즈가르의 이 작은 학교는 건물은 작지만 운동장은 한없이 넓었다. 드넓은 잔디가 펼쳐진 마당에 예쁜 나무가 한그루 심어져 있었다. 교실보다는 그 마당에서 수업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이들은 교실 안 책상에 앉아 칠판을 쳐다보기보다 마당에 나와 뛰어놀기도 하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냈다. 운동장과 교실의 구분이 없는 학교였다.

    학교에 도착한 첫날에는 벽화를 그렸다. 희한하게도 나에게 할당된 그림은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였다.

 뭔가 인도 사람이 와서 세종대왕을 그리는 느낌일 것 같아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부담감을 안고 마친 스케치를 보고 인도 사람들이 깔깔 웃으면서 잘 그렸다고 똑같다고 해줘서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림은 내가 자유롭게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자연을 안고 있는 두 팔을 그리고 아래에 ‘나와 자연은 하나입니다’라고 힌디로 썼다. 다른 친구들도 하나씩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고, 다 같이 합작품도 그렸다. 아이들이 자연과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기억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언제까지 이곳에 남아있게 될까? 언젠가 이곳에 돌아와 이 그림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은 너무 순수해서 그림을 그리는 우리 주변에 와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구경하고, 환하게 웃고 장난을 치고 난리였다.

  거듭된 비와 학교 사정으로 거의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아이들과 마음껏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기다렸던 만큼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꺼내놓았다. 색색깔의 색종이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고, 과학 선생님이 가져오신 페트병으로 로켓을 만들어서 쏘아 올리기도 했다. 하루 만에 이것저것 하는 것이 정신없을 법도 한데 아이들은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뛰고 웃으며 따라주었다. 너무 순수하게도 새로운 모든 것에 마음껏 반응하는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로켓을 날리며 신난 여자아이들

  내 카메라를 가져가 수십 장의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찍어다 가져다주는 아이들. 아무것도 재고 따지지 않고 표현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과의 시간이 서로에게 소중하게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웃고 서로를 좋아해 본 적이 얼마만인가 싶다. 아이들은 꼭 그런 마음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언제 나를 보았다고 내게 다가와 나를 꼭 안고 내 손을 지긋이 잡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곧 우리가 떠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즐거워만 보였지만 이별을 아는 나는 이 만남이 아쉽기만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인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크로켓 방망이를 사 서로의 사인을 해 선물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유난히 나를 따르던 여자아이는 색종이에 그린 정성스레 그린 그림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양갈래로 머리를 딴 이 소녀가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짧은 만남이라도 이 시간들이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온기를 더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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