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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1. 2016

인도, 식민지배와 분열

  영원할 것 같았던 위대한 제국도 역사의 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붉은 성, 자미 마스지드, 타지마할은 모두 무굴제국 최고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천하가 내 것 같았던 제국의 왕들도 이러한 시기기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여전히 웅장하고, 위엄한 모습이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의 늘어선 줄과 어우러진 모습에서는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한 때 제국의 위엄과 권력을 상징하며 끊임없이 쌓아 올려졌던 성들은 이제 말 그대로 유적이자 관광지가 되었다. 높고 커다란 풍채일수록, 잊히기 싫었던 연약한 모습이 비치는 것 같은 역설이 느껴진다.  

  샤 자한의 아들인 아루장제브가 죽고 난 뒤, 무굴제국은 여러 개로 찢어졌다. 서구 제국들도 인도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18세기 인도는 혼란에 휩싸였다. 그러던 중 인도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1757년 영국 동인도회사군대와 프랑스 군대가 전투를 벌였고(플라시 전투), 이 전투에서 영국이 승리하면서 영국은 인도 경영을 본격화했다. 1857년 무굴제국은 막을 내렸고, 1858년 인도는 영국의 직할지로 편입되면서 동인도회사가 아닌, 영국 국왕의 직접 지배를 받는 식민지배가 시작된다. 이후 1947년 8월 15일 독립에 이르기까지 인도는 89년간 영국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인도의 식민시기는 어땠을까.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은 우리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식민지배가 그러하듯 영국의 식민지배 역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깊은 병폐와 갈등을 인도에 남겼다. 카슈미르 지역을 비롯한 인도 곳곳에서의 극심한 종교적 갈등은 영국 식민지배의 대표적인 잔재다. 인도 지역의 이슬람과 힌두 갈등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이다. 영국의 식민지배는 비인간적인 수탈과 무력진압뿐 아니라 평생 인도인 들을 스스로 싸우고 헐뜯게 하는 갈등의 씨앗을 인도에 뿌렸다.

  식민지배 초기 영국인들은 인도인의 생활과 종교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당시 인도는 단순히 경제적 이용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점차 인도라는 거대 시장의 매력을 알아가게 된 영국인들은 인도인들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통치하고자 하는 여러 전략을 간구하게 된다. 인도인을 서구화하기 위해 인도 고유의 종교와 문화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인도인들의 격렬한 무장투쟁에 부딪치게 된다. 서구 문명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인도인들에게 종교는 곧 삶이자 정체성으로 큰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과 소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교인들에게 돼지기름과 소기름이 묻은 총의 사용을 강요했던 것은 용병들의 큰 반발을 일으키게 된다(세포이 항쟁). 

  놀란 영국인들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그들의 생활과 관습을 존중하자니 인도인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독립을 주장할 것 같고 서구화하자니 극심한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인도에 대한 서구화 정책을 버리고 인도인의 관습을 존중한다는 명목 하에 내부의 종교라는 차이를 활용해 교묘히 인도인들을 스스로 갈등하고 대립하도록 부추겼다.

  이슬람과 힌두교 사이를 이간질했으며, 영국을 돕는 종교 세력을 은밀하게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이들을 조종했다. 한때는 시크교도를 전폭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이슬람과 힌두교가 시크교도를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때로는 이슬람을, 때로는 힌두를 지원해서 서로 영국에 잘 보이기 위해 독립을 위한 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영국인들이 조장한 갈등은 독립이 되어서도 완화되지 않았다. 간디는 이 갈등을 끝까지 막아보려 했으나 자신조차 극단적인 힌두 신자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인도의 이슬람 세력은 파키스탄이라는 독립국가를 세웠고, 분쟁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도에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갈등의 폭탄을 품은 위태로운 상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식민, 즉 식민지배를 벗어나는 것은 단순히 독립으로 끝나지 않는다. 경제적 수탈과 학살보다 무서운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의식 속에 남겨진 식민의 잔재다. 영국의 지배는 끝났지만 인도인들 스스로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고 화합하며 살기 좋은 인도를 만들어가야 하는 일은 너무나도 큰 숙제로 남아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50여 년이 되었지만 우리 안에 있는 식민의 잔재를 거둬내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식민지배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독립 후에도 흔히 독재와 이어지며 뒤쳐진 경제 개발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한 나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 비판적인 의식을 마비시킨다. 식민주의를 경험했던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지금 과거의 우리가 그랬듯 군사정권에 맞서며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은 민족 간의 분쟁과 질병, 황폐화되어버린 땅에서 가난과 생존을 위해 싸우고 인도 역시 종교적 분쟁과 갈등, 경제 개발과 정치적 성숙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식민지배라는 아픔을 겪은 이 나라들이 진정으로 그 아픔을 극복하길 바란다. 식민지배라는 것은 매우 교묘하고 지능적이어서 그것에 대처하는 우리 역시 더욱 날카롭고 영민해야 한다. 맹목적 민족주의로는 교묘한 식민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우리 안의 식민의 잔재를 더욱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급진적으로 바꾸어가야 한다.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모든 나라가 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만들어온 문화와 역사에 자긍심을 가지고 다양한 개성과 주장이 자유롭게 발휘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지금도 식민주의와 싸우고 있다.     

인도 비폭력독립운동의 상징인 물레들-간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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