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미국에서 아시안이라는 이름표 아래 산다는 것

by 엄이우주

미국은 지금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범죄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 시국에 나도 뭔가 하고 싶어 우리 집 앞마당에 "아시안 증오를 멈춰라" 팻말을 꼽기로 마음먹고 아마존에서 프라임 멤버 무료 배송도 안 되는 "STOP ASIAN HATE" 팻말을 구입한 날, 나는 동네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자신의 차에 일본 전범기 스티커를 붙여놓은 이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 내가 저 아시안을 위해서도 싸워야 하나?"


나는 나를 아시안이 아닌 한국인으로 정의한다. 더 정확히는 남한인. 그래서 과거 미국이 자행한 중국인 배척 법(Chinese Exclusion Act)이나 일본계 미국인 강제 이주(Executive Order 9066) 역사 등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긴 했지만 그게 내 마음에 크게 와 닿진 않았다. 차라리 LA 폭동 때 부서진 한인 가게를 보면서 더 화가 났다. 왜냐면 나는 중국인이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계 미국인 강제 이주 역사는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했기에 치른 대가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터트렸기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국은, 세상은, 나를 한국인으로 보지 않고 아시안으로 본다. 한국인인 내가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같은 편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 아이들이 작금의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 아이는 중국인 엄마와 백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겉보기에는 그냥 백인으로 보이는 아이였기에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시안 증오 범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분명히 자신은 동양인이기도 하고, 동양인 증오 범죄로 자기 가족의 반 이상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세상은 자신을 그저 백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우리가 인종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백인인 내 남편과 한국인인 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어떤 인종이 되는 건지, 당연히 백인이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알고 보니 아버지가 흑인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를 흑인으로 규정하고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흑인이라기보다 유색인종이라고 표현하는 분위기이기는 하다.)이라고 하지만 오바마의 어머니는 백인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렇게 인종을 나누는 것 자체가 분열을 일으키기 위한 편가름이 아닐까? 하는 음모론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인종을 나누는 기준이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이렇게 형편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시안이라는 말은 결국 아시아 대륙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아시아 대륙은 왜 이렇게 성의 없게 나누어져 있는 건지... 인도도 아시아, 이스라엘도 아시아이며 사우디아라비아도 아시아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아메리칸이라고 부르는 미대륙에도 미국뿐만이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는 아메리칸이라고 하면 미국만을 떠올리지 않나?


아무튼, 나는 엄마가 중국인이지만 자신은 백인처럼만 보여 어느 사회에 속해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할지 혼란스러운 저 아이처럼, 내가 미국에서 다른 동양인을 위해 싸우고 미국이 과거에 중국인이나 일본인에게 자행했던 역사에 같이 분노하는 것이 혹시 한국인으로서 나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 될까 걱정이다. 그리고 나는 전범기 스티커를 차에 붙이고 다니는 일본인을 위해서 싸워줄 만큼 훌륭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위해 싸우지 않으면, 세상은 언젠가 그와 함께 동양인인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를 위해 싸울 것인가? 누구를 위해 소리칠 것인가? 인종 차별을 막기 위해 인종차별 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

.

.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러 자료들을 찾아 읽으면서 고뇌에 빠져있었는데 남편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잘알인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 이 고민을 이야기했는데 남편이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었다.


"음... 그 누구를 위해서 싸우지 말고 그냥 너를 위해 싸우는 게 어때?"



며칠 후, 아마존에서 주문한 팻말이 도착했다. 우리 집 앞마당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꼽아두었다.


sah.jpg


편 먹고 싶지 않은 사람과 편을 먹어야 해도 나는 나를 위해 싸울 것이다. 내 싸움에 내가 맞서지 않으면 아무도 나 대신 싸워주지 않을 테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