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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양냉면을 싫어하는 이유

by 엄이우주

나도 몰랐는데 우리 동네에 유명한 맛집이 있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데 평생을 한동네에 살았으면서 성인이 돼 내 발로 그곳을 찾아가 보기 전까지는 한 번도 그 식당에 가본 적이 없다. 동네 맛집이니 부모님이 한번 데리고 가주실 만도 한데 말이다. 그곳 앞을 지날 때면 길게 늘어져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만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곳은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집이었다. 사실 가게 이름만으로도 메뉴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으나 어릴 땐 평양냉면이라는 게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몇 년 전부터 인가 평양냉면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은 평양냉면의 맛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듯 보였다. 나도 호기심에, 그리고 마침 동네에 유명한 평양냉면집이 있으니 그 유행에 한 번 끼어보기로 하고 매일 앞을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안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3대가 대를 이어하고 있다는 표지판과 함께 다섯 가지 선택지가 있는 단출한 차림표가 보였다. 내심 주문이 복잡하여 주문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자리에 앉아 평양 물냉면을 하나 시켰다. 원래는 비빔냉면을 더 좋아하지만 평양냉면은 물냉면이라 하니 정석대로 물냉면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런저런 기대를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평양냉면의 맛을 아는 사람일까? 그렇지 않은 사람일까? 맛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얼마나 맛이 있을까?


드디어 냉면이 내 앞에 놓이고 설렘과 함께 국물을 한번 들이켠 후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갑자기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아니, 싫다기보다 나는 이 말이 참 치사한 것 같다. 물론 이 속담은 첫 번째 시도에 생각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 한 번의 기회밖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첫술에 배가 부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다니? 참으로 야속하다. 세상이 언제부터 그렇게 호락호락했던가? 첫술에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에게 둘째 술을 주던가? 아무튼 내 평양냉면은 첫술에도 둘째 술에도 그리고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도 내게 배부름을 주지 못했다. ‘아, 나는 평양냉면의 맛을 모르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가게를 나섰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평양냉면을 잊고 살았다. 열심히 살았다. 누군가는 충분치 못하다 하겠으나 나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십 대 때는 대학에만 가면 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 좋은 대학에 가고 기회를 잡으려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애만 쓰고 있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우연히 평양냉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한 유명인이 평양냉면 마니아라며 그 방송에 나왔는데 그는 웃는 얼굴로 평양냉면을 열 번만 꾹 참고 먹어보면 당신도 그 진가를 알게 될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참으로 구질구질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나에게 평양냉면을 열 번이나 먹어볼 여유 따위는 없다. 당장 소박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도 있어야 꾸역꾸역 살아갈 수 있는 내 빡빡하고 초라한 삶에는 미래의 나에게 정말로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기쁨을 위해 열 번의 돈과 시간을 투자할 틈이 없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 많은 기회비용을 들여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된 건가? 이북에서 넘어와 심심하고 깊은 맛으로 사랑받는 음식이라던 평양냉면이 갑자기 나에게는 그 어떤 음식보다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그 유명한 평양냉면집을 내가 성인이 되어 내 발로 찾아가기 전까지 가보지 못한 이유는 우리 부모님도 평양냉면의 맛을 모르시기 때문이리라. 가난한 동네에서 세 아이를 키워낸 우리 부모님의 고단한 삶에 평양냉면의 맛을 알게 되는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딸인 나도, 내 자매들도 여전히 그 맛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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