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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순간이지만 후회는 영원이다

by 엄이우주

막 출근을 하고 컵을 씻으러 탕비실에 가는데 T아주머니가 혼자 밖에서 라켓을 들고 벽을 상대로 공을 치고 계신 것을 보았다. 너무나 T아주머니 다운 행동에 웃음이 나와 인사를 하러 다가간 나에게 아주머니는 갑자기 라켓을 쥐어주셨다.


'피클 볼(Pickleball)이라는 거야, 쳐본 적 있니? 테니스랑 비슷해.'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아주머니는 공을 던지셨고 그렇게 우리는 1시간 동안이나 같이 공을 쳤다. 겨울인데도 땀이 비 오듯 흘러 겉옷을 벗고 반팔을 입어야 했다. 탕비실에 컵 씻으러 가다 갑자기 당한 봉변 아닌 봉변이지만 재밌었다. 참고로 조교들에게는 15분간의 휴식 시간 두 번과 30분의 점심시간이 주어지는데 그걸 이렇게 한 번에 몰아 쓰든 나눠 쓰든 자기 일만 해놓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내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T아주머니는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아주머니 또래의 여느 베트남인들이 그렇듯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가족들과 다 같이 난민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오셨다.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베트남인 친구는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군인이셨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편에 서 싸운 후 공산당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자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베트남에서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고 한다. 직장을 구하거나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수도 없어 미국에 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도 한 나라가 둘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아픔이 있어 그런지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주머니가 미국에 처음 왔을 무렵에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제 곧 쉰이 되시는 아주머니는 두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조교들 사이에서도 일 잘하기로 소문난 미국인이 되었다. 아주머니는 한국을 정말 좋아하셔서 자기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베트남 사람으로 잘못 태어났다고 하신다. 한국인인 내게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언어인지 알려주시고 한국 음식이 얼마나 맛있고 영양가 있는지도 한참을 말씀해주시곤 한다.


근데 아주머니는 학교를 떠나고 싶으시단다. 아이들도 다 커 자기 앞가림을 하니 이제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싶다 하신다. 뭐가 되고 싶으신데요? 물으니 건물주란다. '아, 정말 세상 사람들 다 똑같구나.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더니 미국인도 건물주가 되고 싶어 하네...'라고 생각하며 잠자코 이야기를 듣는데 아주머니가 친구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친구 중에 CPA 회계사로 돈을 정말 많이 버는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 돈은 물론 노후자금으로 묶어놓았던 각종 연금과 주식까지 다 팔아치우고는 루이지애나 주에 여덟 가구가 살 수 있는 건물을 하나 샀다고 한다.


나는 뻔한 결말을 예상했다. 아~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셋 돈을 받아 물가 저렴한 남미 나라에서 유유자적하게 사신다는 이야기라도 하시려나 보다 했다. 근데, 결말은 같지만 과정을 내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일단 그 친구가 지금 멕시코에 살고 있다고는 한다. 그런데 루이지애나주에 산 그 건물은 단순히 세를 받는 건물이 아니라 Rent to own을 직접 하고 계신다는 거다.


한국처럼 미국도 집을 사려면 큰돈이 필요하다. 아무리 집값의 95%를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집 값의 5%만 있어도 된다지만 그 5%도 이미 몇천만 원이다. 게다가 집값의 20% 이하를 계약금으로 내면 대출금에 대한 보험을 또 따로 들어야 해서 다달이 내야 하는 돈의 액수가 커진다. 그나마도 신용이 안 좋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월세를 내는 돈이나 은행에서 대출금을 갚는 돈이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월세가 더 비싸다고 해도 쉽게 집을 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그랬다.


그래서 정부에서 Rent to own이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큰 계약금이나 기타 비용을 받지 않고 그냥 월세를 꼬박꼬박 내면 그 돈을 정부에서 저축해두었다가 나중에 집값만큼 쌓이면 그 집을 산 것으로 해주는 거다. 우리도 한번 알아봤었는데 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고 신청하기도 까다로웠다. 근데 이렇게 정부차원으로 하는 일을 개인이, 그것도 노후자금까지 탈탈 털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놀라웠다. '그럼 아주머니도 건물주가 되고 싶은 이유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요?'라는 내 물음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두렵다고 했다. 곧 쉰이 되는데 새로운 일을 하기 겁나고 생각했던 대로 일이 안 풀릴까 봐 걱정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그 빨간 볼을 씽긋 들어 웃어 보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But my dear, fear is temporary, and regret is forever.

얘야 그렇지만 두려움은 잠시뿐이고 후회는 평생이잖니. 나는 한번 도전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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