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들이 공포를 다루는 방법
나는 원래 사무실 인근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오다가, 작년 12월부터는 권투를 하고 있다. 헬스만 몇 년하니 지루하기도 했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복싱'을 떠올리면 강한 펀치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기술은 방어와 회피이다. 일단 안 맞아야 운동을 즐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방어나 회피를 위해 중요한 것은 운동신경이나 튼튼한 허벅지일 것이라 막연히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신의 준위(準位)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다.
"준위"란 에너지의 레벨을 뜻하는 말이다. "준위"가 너무 높다는 것은 정신이 지나치게 흥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준위"가 너무 낮다면 필요한만큼 긴장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링 위에 올라가서 상대를 대면하면 어떨까? 내가 저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힘, 체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한다면 여유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싱은 룰이 정해진 스포츠이다. 상대가 기술적으로 나보다 뛰어난 것 같은 '느낌'만 받더라도 정신의 "준위"가 높아진다. 속된 말로 쫄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상대의 펀치를 예상하기도, 피하기도 어렵다. 심하면 주먹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려버리기도 한다.
저번주 토요일, 이번에 우리 사무실로 합류하게 된 절친한 변호사와 함께 술자리를 했다. 나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문득 교대역 사거리를 걷다가 느꼈던 공포감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어쏘 변호사로 있을 때, 대기업의 사내 변호사로 있을 때에는 법원 앞에 즐비한 변호사 사무실을 보고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대형로펌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막상 개업을 해서 교대역 사거리를 걸어보니, 법원 앞에 진치고 있는 선배님들이 대단해보인다. 10년, 20년 동안 숱하게 많은 의뢰인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경험이 골목마다 스며져 있는 기분이다. 자, 의뢰인들께서, 이 선배님들이 아니라 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나여야 하는가?
수십, 수백개의 변호사 사무실 간판 아래에서 그러한 질문을 받으면 순식간에 정신의 준위(準位)가 높아질 것이다. 심하면 패닉이 온다. 링에서 구석에 몰린 복서처럼 되는 것이다.
우리의 훌륭한 코치께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줬다. 우선 상대방과 거리를 벌린다. 패닉에 빠졌을 때는 상대의 공격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우니까. 그리고 어깨를 한번 털면서 힘을 뺀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에서는 회피도, 방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정말 중요하다. 잽을 낸다. 두렵고 힘든 상태에서도 우선 주먹을 낸다. 그리고 다시 훈련했던 것처럼 경기를 계속한다.
변호사들의 송무 업무라고 복싱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질 것 같다고 잔뜩 쫄아서 우왕좌왕하면 아무 것도 안된다. 우선 현재의 상태를 냉정하게 살피고, 계속해서 잽을 내야 한다. 공격을 최대한 정밀하고 섬세하게 계속 해서 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짜피 라운드는 끝난다. 아무리 길어야 3분이 아닌가? 3분 동안 흐리멍텅한 눈으로 주먹을 피하느니, 가드를 단단히 올리고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는게 낫다. 그래야만 지더라도 수치스럽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