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 대표자에게 격려를
어느 IT 회사의 대표는, 무려 3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힘겹게 법인 대출의 이자를 갚았다.
파산, 회생 실무를 하다보면 법인대출을 갚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을 넘어서서, 대표자 개인의 인생까지 갈아넣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한 번은 판교에서 IT 회사를 운영하던 50대 초반의 남성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 분은 S그룹 개발자 출신으로, 회사를 15년 넘게 운영해왔다. CCTV 관련 사업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회사가 잘 될 때에는 판교에 큰 오피스텔의 한 층을 통으로 임대하고, 직원이 50명이 넘을 정도로 큰 회사였다. 그런데 중국산 CCTV가 염가로 수입되면서 회사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설상가상 핵심 인력들이 연달아 회사를 퇴사하면서 회사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필자를 만난 시점에는 이미 회사가 영업을 중단한지 3년이 넘었을 때였다. 대표자는 지난 3년 동안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소득의 70% 이상을 법인 대출의 이자를 갚는데 써 왔다.
대표자께, 그동안 왜 파산을 하지 않았는지 여쭈니, 파산을 하면 더 이상 금융거래도 못하고 평생 파산자로 낙인찍히는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심지어 파산을 하는 것은 은행 및 신용보증기금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비슷한 예로, 최근에도 서울 마곡에서 어느 IT회사를 운영하던 부부가 오셨다. 부부 2명이 각자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 중이었는데, 여성분이 운영하던 회사가 매우 어려워졌다. 이 분들도 파산의 존재는 알지도 못하고, 여성 분이 취업을 한 다음 1년 넘게 법인 대출 이자를 갚았다. 금융회사에게 대출을 못 갚는 것을 큰 죄악으로 여긴 것이다.
"금융회사나 보증기금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다음 그 이자를 잘 갚다가,
어느 순간 회사가 어려워져서 파산을 하게 되는 경우,
그 파산을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대표자들이 도덕적 죄책감 때문에 파산 시기를 미루다가 더욱 큰 비용을 치르는 경우를 보아왔던바, 이에 관하여 짤막하게 의견을 남기고자 한다[법인파산 상담시 자주 드리는 이야기이다].
법인파산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한다.
파산 회사의 채권자들이 금융회사뿐이라면(은행, 기보, 신보, 중진공 등), 파산 신청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근거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금융회사와의 거래는 상호 간의 경제적 이익 실현을 위한 계약일 뿐, 신뢰관계가 개입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금융회사는 대출을 통해 이자수익을 얻어왔는데, 이자율을 책정할 때에는 "파산위험"을 책정하여 반영한다. 대출을 받은 다음 정상적으로 대출이자를 갚았다면, 금융회사는 이미 "파산위험"의 대가를 수령해온 것이다. 여러 채무자들 중 일부가 파산하여 그 "파산위험"이 현실화되었다고 하여, 특정 채무자를 비난할만한 윤리적인 근거가 없다(통계적으로 계산하여 이자에 반영한 파산위험이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물론, 파산 회사의 채권자들 중 지인, 일반적인 거래처들이 포함되어 있다면, 충분한 노력 없이 파산을 신청하는 것은 다소간 반성해야 할 영역이 있다. 이는 그 채권자들이 회사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이유가 사적인 신뢰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법인을 경영하는 과정이 충분히 투명하고, 정당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만일 어느 회사가 거래처나 지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지만,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다가 결과적으로 파산에 이르게 된 경우라면, 경영자는 자신이 받은 "신뢰"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보답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돈을 다 갚지 못한 것에 대하여 서운함이나 아쉬움을 표시할 수는 있어도, 대표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근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이유도 있다.
법인을 운영하다가 이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창업자는 그 법인을 하루 빨리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다시 시작하거나, 근로자로서 취업을 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 훨씬 이득이다.
법인 대표자가 프리랜서나 근로자로 일하면서 벌어들인 이자로 기보, 신보, 중진공의 이자를 갚고 있다면, 이는 그 보증기금들에게는 이익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대표자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힘들다. 스타트업과 같은 혁신 기업들이 성공했을 때 우리 사회에 가져다주는 이익(글로벌 경쟁력, 추가적인 기술 혁신, 일자리, 납세 등)을 생각해보면, 기보, 신보, 중진공에게 이자를 갚게 하는 것보다는 그 회사를 정리하고 상쾌한 새출발(이른바 "fresh start")을 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다.
어느 측면으로 보아도, 법인 파산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든 과거에 얽매여 새로운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아니된다. 은행에 돈을 다 못 갚은 것이 미안하다면, 나중에 사업으로 성공해서 그 은행으로부터 더 많은 대출을 받으시라. 그것이 그 은행에게도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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