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PR과 겸손, 그 사이 어딘가에서
어느 변호사가 30년 전에 개업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돈을 버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선 주변 동료들, 선배들에게 개업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유능한 '사무장'(사건 수임을 위한 브로커 역할을 겸하는 경우들이 있었다)을 모신다. 사건을 수임하는 '상업적인' 일은 사무장께서 알아서 하시는 것이고, 변호사는 수임한 사건들을 적당히 처리하면 된다.
듣기로는, 이 시절에는 '수임료' 이야기를 변호사에게 직접 하는 경우도 드물었다고 한다. 변호사는 고고하게 재판을 처리하는 선비와 같은 직업인데(실제로 변호'士'이다), 낯뜨겁게 돈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상업적인 일에 관심이 없어도, 과거의 변호사의 정장 주머니에는 현금이 가득했다고 한다.
법조시장은 불과 10년 사이에 급변했다.
많은 사람들은 변호사 수가 늘어서 시장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사건 수임의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이다.
과거에는 로펌이 사건을 수임하려면, 사무장을 두거나(대형로펌에서는 '전문위원'이라는 표현도 쓴다), 법원 앞에 큰 사무실을 빌린 다음 '간판'을 내거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사무장은 의뢰인이 될 사람들과 여러 만남을 가지다가, 사건이 생기면 변호사 사무실로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법원 앞에 사무실을 내는 이유는, 송사에 휘말린 사람이 법원을 찾았다가 그 인근 변호사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 사건 수임을 맡기는 경우도 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이버 검색광고가 시작되면서 잠재적인 의뢰인들을 사무실로 직접 끌어들이는 신박한 방법이 생겼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게 된 사람은 네이버 검색창에 <경찰 조사 받는 방법> 따위를 검색해본다. 도대체 수사관이 무엇을 물어보는지, 혹시 조사받다가 바로 감옥에 가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을 검색하듯, <경찰 조사 받는 방법>을 네이버에서 먼저 찾는 것이다.
네이버 검색 결과에는 여러 로펌들이 작성한 블로그 글, 네이버 카페 글, 돈을 주고 작성한 언론기사 등이 노출된다. <경찰 조사 받는 방법>을 검색한 사람은, 양질의 정보를 제공한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마치 책을 읽으면 그 저자에 대한 믿음이 생기듯 말이다. 그러다 해당 로펌에 상담을 문의하게 되고, 사건 수임까지 맡기게 된다.
위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사무장"의 역할은 없다. 법원 앞에 큰 사무실을 둬야 하는 필요성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보다는 네이버 검색 결과에 로펌이 어떻게 더 많이, 효과적으로 등장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이것이 마케팅 기술이다.
"마케팅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득을 본 변호사도 있고, 손실을 본 변호사도 있다. 손실을 본 대표적인 경우가 전관 변호사(판사 출신,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다. 과거에는 형사 사건의 상당수를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비싼 수임료로 수임해서 비교적 쉽게 매출을 올렸다. 전관 출신 변호사가 경찰, 검찰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면, 의뢰인들은 높은 수임료라도 쉽게 사건을 맡기고는 했다.
그런데 정교한 마케팅 기술이 등장하면서, 전관 출신이 아니어도 형사 사건을 높은 수임료로 수임하는 방법이 등장했다. 이처럼 온라인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회사가 소위 네트워크 로펌의 1세대로 불리우는 법무법인 YK이다(필자의 사견임). "전관 로펌"은 마케팅 기술로 무장한 젊은 법무법인에게 매출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게 되었다.
"전문 변호사"라는 말이 적극적으로 쓰인 것도 "마케팅 시대"와 맞물린다. 과거에도 '이혼 전문', '형사 전문'과 같은 말을 쓰면서 사건을 수임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현재와 같이 분야가 시장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형사 전문'도, 성범죄 전문/금융사기 전문/기업범죄 전문 등과 같이 그 분야가 세세히 나뉘고 있다. 심지어, 같은 "성범죄 전문"이라 하더라도, '피해자 대리 전문', '무고죄 전문' 등으로 또 다시 나뉘었을 정도이다.
"전문 변호사"를 활용한 마케팅은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번째는 의뢰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혼 분야 최고 전문 변호사"라는 말을 쓰면서, 이혼 관련 각종 경력을 길게 써 놓는다면,의뢰인 입장에서는 알게 모르게 이혼 사건을 수임해도 될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게 된다. 두번째 장점은 검색 광고의 비용 및 효율성의 문제인데, 이는 기술적인 사항이니 우선 넘어간다.
"전문 변호사" 마케팅을 하려면 자기 PR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PR은 필연적으로 겸손과 배치된다. 만일 필자가 "저는 이혼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입니다"라는 홍보 문구를 쓴다고 하자. 사실 저 말은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다. 필자를 가르친 유명한 가족법 교수님도 계시고, 내로라 하는 로펌에서 이혼 소송만 수십년 연구한 선배 변호사님들도 계신다. 가정법원에서 오랫동안 판사로 근무하면서 실무서를 집필한 분도 계신다. 그런 분들이 서슬퍼런 안광을 번뜩이면서 "이혼"에 관한 훌륭한 논문, 판례평석, 교과서를 써 내고 계신데, 본인을 "최고 전문가"로 홍보하는 것은 심적으로 상당히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변호사로 개업한 이상 어느 정도 매출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기 PR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겸손"한 사람이 되려면 생계를 걸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필자 역시 마음 같아서야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다니고 싶지만(실제로 그렇다), 그러기는 쉽지 않다.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나의 마음 속으로는 겸손을 갖추되, 외부적인 표현만 자신감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구사하는 언어에 맞게 생각하기 마련이므로 이는 미봉책이 될 뿐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진짜로 오만한 사람은 될 수 없으므로, 미봉책일지언정 수시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떠올리면서 마음 속으로 "겸손"을 외치며 겸양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산 전문 변호사", "기업법무 전문"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끊임 없이 연구에 매진하여 정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