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 그 피할 수 없는 순간에 관하여

송무에서 승패를 가르는 세 가지: 사실관계·재판부·변호사

by 엄건용 변호사

과거에 모셨던 선배 변호사님들 중 '소송' 관련 일은 전혀 하지 않는 분들이 몇명 계셨다. 기업 도산 전문 변호사님, 금융 자문만 하시는 변호사님 등이 그렇다. 송무를 안 하시는 이유를 여쭤봤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답변이 승패에 대한 부담이었다.


기업 회생·파산 업무는 전형적인 의미의 ‘승패’로 환산되기보다, 절차를 안정적으로 설계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성격이 강하다. 특히 법인 회생 절차가 성공하는가 여부는 기업의 자산이나 수익성에 달려 있다. 변호사는 이 부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서, 법인 회생의 성공이 변호사에게 달려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 자문의 경우 프로젝트의 성패는 변호사와 관련이 적다. 부동산PF의 경우 증권회사나 시행사의 역량이 중요하고, M&A는 PE나 주관 회계법인 등이 중요하다. 변호사는 관계자들이 이끌어 온 딜(deal)을 안정적으로 종결(closing)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송무가 아닌 기업회생, 금융자문, M&A 등의 분야는 변호사가 주인공이 아니므로, 프로젝트의 성패에 대한 스트레스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KakaoTalk_20260122_182538624.jpg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 복도, 이 곳에서 재판이 진행된다.


그러나 송무는 다르다. 소송의 승패가 전적으로 변호사에게 달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변호사가 개입해 바꿀 수 있는 영역’이 가장 큰 분야이다.


어느 사건이 승패할지 여부에 관하여, 여러 요인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꼽아보면 3개 정도 된다. 우선 사건의 사실관계가 중요하다.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서로 억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법률의 관점에서 사실관계를 정리해보면 상대적으로 더 타당한 주장을 하는 쪽이 분명히 있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유리한 사실관계를 가진 쪽을 대리해야 승소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은 사실관계가 특정 일방에게 '비교적' 유리하고, 나머지 일방에게 '비교적' 불리하다. 판사님을 누구를 만나느냐, 변호사가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실관계의 유리함/불리함 정도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어떤 판사님을 만나는지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동일한 쟁점이라 하더라도 판사님마다 생각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여러 변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먼저 '사실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이를 입증하는 것은 변호사의 능력이다. 법정 바깥에서야 너무나 뻔하게 보이는 사실이라 해도, 판사는 철저하게 증거에 의하여 사실관계를 형성한다.


한편 판사님을 누구를 만나는지 여부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혹자는 판사의 이력이나 성향을 알아보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개별 사건에서 판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알아보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어떤 변호사가, 얼마나 열심히, 어떤 방법으로 일하는가' 여부가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가 된다. 송무 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들이 사건의 결과에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고, 경우에 따라서는 송무 사건을 기피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KakaoTalk_20260122_181546552_02.jpg 누군가는 승소를, 또 다른 누군가는 패소하는 것이 재판이다.


재판의 본질은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조정'이나 '화해'를 하게 되면 쌍방이 조금씩 양보하고 사건이 끝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로 분쟁이 치열한 사건, 재판의 결과가 중요한 사건의 경우에는 '조정'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재판부는 필연적으로 어느 1명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그 말은 즉슨, 그 다른 1명의 주장은 묵살된다는 것이다. 주장의 설득력을 판단했을 때, 어느 1명이 51% 타당하고, 나머지 1명이 49% 타당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1명은 승리하여 모든 것을 갖고, 나머지 1명은 패소하여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일부승소/일부패소라 하더라도, 대게 한 쪽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나머지 한 쪽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 자체가 냉혹하고 잔인하다. 변호사와 의뢰인은 판단 끝의 칼날에 서 있다.


패소로 인한 손실은 누가 부담하는가. 당연히 사건의 당사자가 부담한다. 민사소송이었다면 돈을 잃게 될 것이고, 형사사건이라면 징역에 가거나 벌금을 낼 것이다. 민사소송에서는 패소하면 대법원 규칙에 따라 상대방의 변호사 보수도 물어줘야 한다.


변호사는 패소하면 성공보수를 받지 못할 뿐이다.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는 것을 '손실'이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호사가 돈만 보고 사건을 열심히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성공보수나 평판의 문제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변호사와 일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가 된다. 전관 변호사이던, 대형로펌 출신이건 간에,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연차가 더 쌓이면 승패에 무뎌질 수 있을까? 우리 사무실에 경력이 20년 넘은 선배 변호사님이 두 분 계신데, 승소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표정부터 다르다. 적어도 의뢰인에게는, 승패에 의연한 변호사보다는 이기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변호사가 나을 것이다. 패소에 대한 부담감을 회피하지 않고, 패소했을 때의 뼈 아픈 마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송무 변호사의 숙명이다.







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