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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 Apr 07. 2022

도경수가 먹고 토한 보양식의 정체는?

TVN <백일의 낭군님>이 남긴 잡학 지식

퓨전 사극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무거운 정통 사극과 달리 유쾌한 내용과 화려한 볼거리로 젊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았다. 그 이유는 바로 역사왜곡.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퓨전사극이 마냥 나쁘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역사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재미 삼아 퓨전사극을 보다가, '정말 저랬다고?' 하면서 팩트를 찾아보며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내 얘기다. 


<보보경심 려>를 보고 고려시대 관습을, <아스달 연대기>를 보고 고대 한국의 언어 체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백일의 낭군님>을 통해 정말이지 이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알게 되지 않았을 우리네 토속 정력제에 대한 지식이 하나 늘었다. 바로 지금부터 서술할 '토룡탕'이 그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는 방영 당시, 양반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삶을 잘 그려냈다고 호평이 자자했다. 실록에 실제로 기록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새끼를 꼬고, 마을 잔치에서 접시를 나르고, 마을에 온 새로운 관리에게 인사드리러 가는 장면을 보며 '나도 저 시대에 살았으면 저렇지 않았을까' 절로 상상이 됐다. 


그렇게 한 회 한 회 즐겁게 드라마를 보던 중 '저게 실화라고?' 싶은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혼절했던 도경수를 위해 남지현이 보양음식인 토룡탕을 준비하는 장면이었는데 메인 재료를 항아리에서 꺼내 가마솥에 퐁당퐁당 넣는 모습을 보고 정말이지 기절할 뻔했다. 대관절 그 재료가 뭐길래 이 난리냐면...


토룡 = '흙토' + '용용'

흙에 사는 용, 지렁이였다. 


아무리 퓨전이라지만 이건 에바인 거 같은데, 싶은 마음에 바로 검색을 했더랬다. 아무리 옛날이지만 지렁이를 먹는다고? 그것도 몸보신으로?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을 텐데, 아무리 배경이 조선시대라 한들 그 징그러운 걸 먹는다는 게 안 믿겼다. 이거야 말로 픽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웬걸 그것은 실화였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식재료로써 지렁이가 언급되어 있고, 광주광역시 북구문화원 홈페이지에 실린 설화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에 눈먼 시어머니를 위해 며느리가 지렁이를 직접 잡아 끓여주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어머니는 그걸 먹고 눈을 떴다!)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현대에도 지렁이를 식용으로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식용 지렁이 농장도 있는데 배추, 귤, 파인애플, 참외 등 나도 제때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채소와 과일을 먹여 키운단다. 이렇게 키운 '붉은줄 지렁이'는 약재나 식용으로 쓰이는데 손질이 꽤 까다롭다. 


흙속에 하루 정도 놔둔 뒤 물에 헹궈, 알코올과 물의 비율을 1:1로 하여 씻는다. 그리고 끓는 물에 넣어 살짝 익힌 후 계피와 감초, 생강, 대추를 함께 넣어 30분을 우려 주면 토룡탕 완성이다. 팁이 있다면 오래 우릴수록 지렁이 진액이 텁텁한 맛을 내기 때문에 조리 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지금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지만 1980년대에는 삼계탕집처럼 토룡탕집이 번창했던 모양이다. 1982년 12월 1일 중앙일보에 실린 <번창하는 토룡탕집, 정력제라면 날개 돋치는 세태가 한심> 이라는 기사가 그 증거이다. 기사에 의하면, 당시 웬만한 강가를 눈여겨보면 서너 집 건너 토룡탕집 간판을 볼 수 있었고, 지령이는 이미 사육되어 작은 면적에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유망한 산업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대체 어떤 성분이 있길래, 어디에 좋길래 그리 번창했을까. 허준의 <동의보감>에선 토룡은 해열과 이뇨작용에 도움을 주며 성질이 차갑고 독은 없으며 맛은 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한림대학교 연구에 의하면, 고혈압이 있는 쥐에 지렁이 추출물을 투여한 결과 혈압을 낮추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한다. 지렁이의 룸브로키나제 효소가 혈관에 쌓인 혈전을 녹인다나 뭐라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건강식품으로 인정했다고 하니 효능에 대해선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다한들, 재료 자체의 생김새가 거부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드라마 속에서 남지현은 도경수에게만 탕을 먹이고, 본인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심지어 재료를 알고 토를 하는 도경수의 입을 막기도 했다!! 광주 설화 속 며느리 역시, 아픈 시어머니만 먹이고 본인은 만들면서 간도 안 봤다고 한다. 참으로 잔인한 그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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