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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석사 Nov 13. 2020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인복(人福)

2019년의 초여름 어느 날. 

아침이 밝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종아리에서 시작된 통증이 한쪽 다리 전체를 덮었다. 허리디스크를 의심하여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약을 먹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진전될 줄이야. 앉을 수도 일어날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리 한쪽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누워 있는 방법뿐이었다. 


 병원에 가야 했다. 주말이었기에 당장 출근해야 하는 걱정은 없었지만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입원까지 생각해야 했다. 누워서 빠르게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회사에는 병가를 쓰면 되고. 아이는 남편이 어린이집 등 하원을 하고 출퇴근을 하면 되겠다. 

 아차, 하필이면 남편은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무려 일주일 동안. 그 기간 동안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내가 거동 자체가 되지 않으니 남편 출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병원을 갈 수도 없었다. 아이는 내 눈 앞에서 대변이 묻은 기저귀가 찝찝한지 벗어 들고 돌아다니는데도 쳐다보고만 있어야 할 정도로 내 상태는 심각했다. 우리 부부는 비상이 걸렸다. 아픈 상황에 병원도 못 가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우리는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제가 저희 집에서 돌보면서 같이 등 하원 하면 되죠.”

 


 앞이 깜깜했던 우리 부부의 구세주가 되어주신 분은 바로 아이의 어린이집 원장님이셨다. 

원장님께서는 감사하게도 흔쾌히 아이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이가 생후 90일 일 때부터 업어 키워주셨던 분이셨다. 세상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아이는 일주일 동안 원장님의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건강하게 지내다가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고 나는 누워 들어갔던 병실에서 기적처럼 걸어 나왔다.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하필이면 입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어린이집 아동학대 기사가 연일 온라인 플랫폼을 장식했다. 보통 어린이집을 고를 때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직장생활과 집 사이에 있는 어린이집 한 군데만 방문해보고 바로 입소 신청서를 썼다. 다행히도 그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어린이집 원장님께서는 우리 부부가 타지에 있는 동안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다. 아이가 아플 때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크려면 예열이 필요하고 열이 나고 아픈 것은 아이가 크는 자연스러운 과정 중에 하나’라고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이사를 일주일 앞두고 퇴사를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간 동안 약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사 준비를 하며 우리 가족의 첫 보금자리였던 도시에서 만나고 감사했던 인연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아이의 첫 돌잔치를 멋지게 준비해주셨던 파티플래너 사장님, 퇴근 후에 아이를 들춰 안고 소아과 마감 시간을 어렵게 맞출 때에도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도착한 것을 확인하시고 마감 셔터를 내려주셨던 소아과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어린이집 원장님 등등..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년이란 기간 동안 새로운 지역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 덕분에 우리 가정은 건강하고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시간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걸 버티게 해 준 건 소중한 인복(人福)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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