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석사 Sep 27. 2020

직장인 부부의 현실






“폐렴이네요.”



소아과에서 아이의 현재 증상에 대한 진단명이 나온다. 단순 감기로 인한 열이기를. 며칠 약을 먹으면 금방 호전될 수 있기를. 그렇게 바라고 바랐건만 아이는 폐렴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 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 둘 중 누가 휴가를 쓰고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연차는 몇 개가 남았더라.

 내일 있을 회의의 회의록은 다 써놨었나.


 나는 일주일 중 꼭 참석해야 하는 일정이 몇 나절 있었고 남편은 하필 파견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아예 휴가를 쓸 수도 없었다.

 

 평소에 잘 치지 않는 SOS지만 혹시나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 싶어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해본다.

 예상했던 대로 양가 모두 개인사업을 운영하고 계셨기에 쉽게 일을 접고 일주일 동안 아이 간병을 하실 수는 없었다. 심지어 우리가 있는 곳은 차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타지가 아닌가.

 열이 39도를 넘어 펄펄 끓고 축 쳐져서 기운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아이를 안고 이런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직장이건 뭐건간에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직장에서의 역할에도 책임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를 쉽게 저버릴 수도 없었다. 육아를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나의 일에 빈자리가 생기면 그 빈자리는 고스란히 다른 동료들의 몫이었다. 나의 육아에 우리 가족 외의 타인을 희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도 얼마 전 퇴사한 동생이 소식을 듣고 아픈 조카를 돌보기 위해 그 날 저녁 급하게 막차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 병원으로 왔다. 동생이 구세주 같았다. 동생이 없었다면? 동생이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우리는 3교대를 하며 일주일 동안 입원한 아이를 간병했고 그렇게 직장생활의 한 고비를 넘겼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당연히 아이가 아플 때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이라면 다행이지만 보통 9 to 6의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 아이가 아플 때가 가장 난감하다.

 슈퍼맘, 슈퍼대디로 멋지게 직장생활을 하다가도 아이가 아픈 날에는 정말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 지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이라도 가까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우리 부부의 경우는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는 그나마 모체로부터 받은 항체가 있어서 덜 아팠던 같은데 12개월 전후 돌치레를 시작으로 아이는 시도 때도 아프다. 특히 어린이집과 같이 기관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한 명이 아프면 단체로 전염되기 때문에 체감상 더 자주 아프다.

 구내염이나 수족구, 독감과 같은 유행성 질환이라도 걸리면? 증상이 가벼워도 전염성이 강해 완치확인서를 받을 때까지는 무조건 가정보육을 해야 한다.

 남편과 나는 그나마 갑자기 연차를 써도 업무에 타격을 덜 받을만한 날을 골라 번갈아쉬며 아이를 돌봤다. 그리고 직장생활로 복귀하고 나서는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의연하게 행동했다. 그것이 우리 부부가 직장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유연한 사회생활을 위해 간혹 업무시간 외의 시간을 투자해야 할 때가 있다.

 

  아이가 아플 때 직장생활에 영향을 받는 것과 반대로 업무 외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나의 육아생활에 영향을 받는다. 이때 부부 둘 중 한 사람의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 부부는 육아를 하면서 공용 캘린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직장생활과 육아를 적절하게 양립하는 것이 둘 다 어색해 서로의 양보를 당연시 생각했었다. 회식과 같이 정규 업무 시간 이외의 일정이 생기면 그 전에는 통보하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그 날 상대방에게 다른 일정은 없는지 꼭 확인을 하고 본인의 일정을 잡는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혼자 육아를 도맡아 하는 상대방에게 고마운 마음은 필수다. 



세상을 한 순간에 바꿔버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맞벌이 부부들이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변 지인은 지금껏 쓰지 않고 아껴두었던 육아휴직을 코로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용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직장과 육아를 적당히 양립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일지 안다. 그럼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든 부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로 맺어진 끈끈한 동지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