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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석사 Oct 02. 2020

나는 육아 부적격자가 아닐까

 2017년 9월 20일.



 나는 내가 처음으로 육아 부적격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날의 감정을 고스란히 SNS에 쏟아냈으니 날짜는 정확할 것이다. 이 맘 때가 아마 아기가 생후 3개월이 조금 안되었더랬다.  


‘아이를 통해 얻는 행복이 과연 육아를 하면서 힘든 것보다 클까.’

‘내가 육아를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같이 이기적인 인간이 엄마라니.’

‘다시 태어나면 꼭 돌멩이로 태어나야지.’



보통 ‘#육아스타그램'과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SNS 계정을 보면 무척 행복해 보이던데 왜 내 육아는 이렇게 지옥 같을까 싶었다.

 내가 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 건가? 아이가 생기면 행복은 자연히 따라오는 게 아니었나? 임신과 동시에 지옥 같은 입덧을 하고 있는 날 보며 육아 선배들은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낫지.’라는 말을 한마디씩 던지곤 했었다. 그때 지나가듯 했던 말이 이런 뜻이었던 걸까.



 아기가 자는 동안 지인의 육아 SNS를 몇 개 훑어보았다. 역시나 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행복한 육아 중이었다. 아기를 사랑하고 아이의 성장에 감사하고 내 애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인다는 말이 구구절절 쓰여있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우리 아기는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을 울면서 보내는데 예쁘다고? 아니면 이 우는 모습조차 부모라면 예뻐 보여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육아 부적격자고 이런 육아 부적격자 엄마를 만난 우리 아기는 얼마나 안쓰러운 거지. 



 1년 먼저 아이를 낳은 육아 선배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만 육아가 힘든 것 같다고. 그게 아니라면 왜 이렇게 힘들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냐고. 한참 동안 내 하소연을 듣던 친구가 웃으며 본인도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잖아.”

“굳이 힘든 걸 이야기해서 뭘 해. 행복한 것만 기억하는 것도 부족한데. 좋은 것만 올리니 좋아 보이는 거야. 네 SNS도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행복해 보일걸?”



 그제야 내 SNS를 다시 열어보았다. 2017년 9월 20일의 글을 제외하고는 나의 ‘육아스타그램’도 딱히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 사진을 올린 나라는 사람의 날 것 그대로의 일상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뒤로 다른 사람의 SNS 계정을 보며 아이에게 죄책감을 갖는 행동을 그만두었다.

 물론 나는 요리에 취미가 없어서 아이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주지도 못했고 아이 책보다는 내 책을 더 많이 산다. 그러다 보니 내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을 완벽하게 챙기는 엄마들을 보면 여전히 부럽고 대단해 보인다.  


확실한 것은 나는 육아가 적성에 맞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 부적격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성에 맞는 사람에게만 일의 자격이 주어진다면 우리 사회에 일이 없는 사람들이 몇 배수는 더 늘어나지 않을까.






 

 나는 나를 ‘나쁜 엄마’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모성애는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했던 나 자신을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좋은 엄마'라는 기준이 있기는 한 걸까? 아니, 애초에 엄마라는 존재를 좋고 나쁘다는 것으로 구분 지을 수나 있을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완벽한 엄마는 없다. 하지만 엄마는 완벽하진 못해도 아이에게 하나의 우주가 될 수는 있다. 아이는 매일 잠들기 전 나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일은 완벽한 엄마는 못되더라도 조금 더 멋진 우주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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