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2-18.12.29 맘스홀릭 베이비 카페 엄마 칼럼니스트
나는 내가 그냥 큰 줄 알았다. 내가 지금처럼 자식을 낳고 키우기 전까지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막상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마치 지금까지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나는 힘들고, 어렵고, 난감하고, 불편한 상황들을 끊임없이 겪게 되었다.
나는 자식을 가졌을 때부터 먹고, 자고, 싸고, 입고, 씻고, 일하고, 외출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물며 집에서 전화를 하거나 TV를 보는 것조차 그 어느 것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이처럼 자식을 키우는 일은 내가 내 마음대로,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생활의 시작이었고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식이 있어서 참 좋다.
우선 내가 자식이 있어서 좋은 첫 번째 이유는 마음 놓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사랑을 할 때마다 늘 불안하고 두려워서 완전한 사랑을 하지 못했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을 할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에게 다 쏟아버리면 상대가 나를 질려할까 봐, 시시하게 볼까 봐, 그리고 나 역시도 금방 지칠까 봐 적당히 나누고, 계산을 해서 사랑을 했었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함에 있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자식들도 크면 지금과는 달라지겠지만, 현재까지 나는 자식들을 사랑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머리를 쓰거나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가 처음에는 내 뱃속으로 낳은 내 자식이라서 당연히 그런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곰곰이 한 번 생각을 해보니 일단 아이들이 순수해서 내가 주는 사랑에 대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기 때문이었고, 그다음으로는 아이들이 내가 본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본인들이 나를 더 사랑해 주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응시해 주고, 볼 때마다 새로워해 주고, 좋아하고 웃어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아이들이 옆에 있어도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도 많고, 핸드폰을 봤다가 TV도 봤다가 책을 봤다가 청소도 했다가 밥도 했다가 정신도 행동도 산만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았는데 아이들은 나에게 그렇지가 않았다.
아이들은 내가 옆에 있을 때면 장난감이나 TV에 잠깐 정신이 팔리더라도 아주 잠시만 그랬고, 곧 이내 나를 찾고, 나에게 와서 나를 바라봐주고, 나를 안아주고, 나를 좋아해 주었다.
이처럼 자식이란 존재는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해 주고, 필요로 하고, 그리고 순수했기 때문에 나는 태어나서 진정 처음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안심하고 사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자식을 낳지 않았다면 평생토록 절대 몰랐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이렇게 편안하고, 안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다음 내가 자식이 있어서 좋은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가끔 돌아가고 싶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나의 어린 시절을 자식을 통해서 다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어른들에게만 허락된 것들 가령 커피와 술 그리고 연애, 여행 등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나는 때로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언니와 함께 도시락을 싸서 동물원에 갔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유치 찬란한 스토리의 뮤지컬을 봤던 것처럼, 해가 어둑해질 때까지 동네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그런 것들도 하고 싶을 때가 있었고, 그래서 그럴 때마다 괜히 그 시절들이 그립고 아쉬웠다.
그럼 하면 되지 않느냐고? 글쎄 누구랑? 어떻게? 갑자기 왜?
물론 그런 것들을 마음먹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해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일 테고, 자식이 있으면 굳이 일부러 하려고 하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 좋았다.
비록 내가 다시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엄마, 아빠, 언니와 그때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시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나의 새로운 가족들 나의 남편, 아이들과 함께 그때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다시 경험해 볼 수 있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또한 나의 그립고 아쉬운 마음도 많이 달랠 수가 있었다.
왜 누구나 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재미있게 봤던 책이나 영화도 몇 번씩 다시 보고 싶은 것처럼, 우리가 경험한 즐거웠던 장소, 추억들도 한 번씩 더 경험해보고 싶고 그런 거 말이다.
이처럼 나는 자식을 낳고, 자식을 통해서 내가 살아왔던 소중했던 인생의 순간들을 다시 경험할 수가 있었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내가 자식이 있어서 좋은 세 번째 이유는 자식을 통해 인생을 덤으로 한 번 더 사는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변 사람들과 이런 대화를 종종 하고는 한다.
“너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언제부터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어?”
나는 그때 그때마다 대답이 바뀌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과연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을까 말까 할 때는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서 그때부터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요즘같이 가끔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힘들 때면 결혼 전으로 돌아가서 결혼을 아예 하지 않거나 아니면 좀 더 다른 선택 즉 다른 남자를 만나보고 싶다. 남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남편도 나랑 비슷한 아니 어쩌면 나보다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거나 말거나 사람은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고, 그러니 인생을 다시 새로 살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자식을 낳고 보니 정말 자식이 나 자신 같고, 분신 같이 느껴져서 나는 자식을 통해 내 인생도 왠지 다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자식에게 내가 미처 이루지 못했던 꿈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냥 내가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았을 때 어릴 때부터 했으면 좋은 경험들, 습관들을 자주 접하게 해 주고, 나쁜 습관들을 적당히 자제 시기키는 정도로 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나도 그랬듯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시행착오들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고, 그리고 그런 시행착오 또한 인생의 밑거름이 될 것이니 그저 부모인 나는 자식을 통해서 이렇게 인생을 한 번 더 살아 보는구나 정도로 만족하면서 옆에서 아이를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아이를 보면 내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 아이는 나보다 어릴 적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고, 책 읽고 그림 그리는 좋은 습관과 취미도 가졌고, 나처럼 이상하게 젓가락질도 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물론 나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이처럼 나는 자식을 통해 마치 패자부활전에서 기회를 얻은 사람처럼 한 번의 인생을 더 살아보게 되었다. 내 인생은 내 인생대로, 자식의 인생은 자식과 가장 가까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나이가 들고, 앞으로 남은 내 시간이 인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도 왠지 그런 사실이 아쉽고 슬프지가 않다. 자식을 낳기 전보다 말이다. 나는 비록 늙고, 나의 시대가 저물어가도 대신에 내 자식이 자라고, 내 자식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 만약에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긴 뭘 돌아가. 그냥 살아야지. 나 대신 내 자식 있잖아. 내 자식이 새롭게 인생을 살고 있는데 뭐. 그럼 되는 거지.”
그리고 내가 자식이 있어서 좋은 네 번째 이유는 자식을 통해 인생을 다시 배운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아이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한글 단어도 더 많이 알고, 영어도 프리토킹이 되지는 않지만 문장을 보면 대충 해석은 할 수가 있고 그 외에 기본적인 상식들도 더 많이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 끊임없이 배우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아는 것이 점점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덕목이나 가르침을 종종 잊어버리고는 한다.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예를 들어보려고 한다.
한 번은 우리 가족이 첫째 아이가 6살이었을 때 주말에 집 근처 개천에 놀러 나갔었다. 그날도 남편은 어김없이 아이에게 돌을 던져서 바위에 맞추는 내기를 하자고 했었다.
"저기 저 큰 돌 보이지? 이 돌을 가지고 저 돌을 맞추는 거야!" 남편이 먼저 던졌고, 성공했다.
그리고 아이가 따라 던졌는데, 아이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남편은 바로 아이에게 으스대며 말을 했다.
"아빠는 성공했고, 너는 실패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이가 남편에게 다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실패해도 괜찮아. 다음에 또 하면 되지!"
남편과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돌을 집어서 던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순간 나도 한 때나마 나의 아이처럼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를 했었던 적이 있었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나의 첫째 아이가 7살 때 내가 아이의 유치원 부모참여수업을 갔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엄마들끼리만 하는 달리기 경주를 했었는데, 내가 달리기를 잘하지 못해서 상대편 엄마에게 진 것이었다.
나는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진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들어오자마자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미안해. 엄마가 졌어.”
그러자 아이는 이내 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괜찮아 엄마.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아 맞네. 그렇구나. 그래 그랬었지.’ 하고 나는 또 한 번 아이의 말에 깨달음을 얻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이로부터 들었던 실패해도 괜찮고, 져도 괜찮다는 말이 어떻게 보면 살면서 가장 중요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들을 참 오랫동안 잊고 지냈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실패할 확률이 낮은 일만을 하였고, 또 내가 이길 수 있는 길만을 택했다.
그 이유는 내가 나의 생각, 나의 마음과는 별개로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어 타인의 눈에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고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포함 내 주변 어른들에게 평소 잘 듣지도 못하고 더군다나 그렇게 살고 있지도 않는 이야기를 나의 어린 자식에게서 들으니 나는 그저 새삼스럽고 놀라울 뿐이었다.
나도 어쩌면 어릴 때는 우리 아이처럼 이런 것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도 이처럼 나의 아이로부터 들었던 두 가지 실패해도 괜찮고, 져도 괜찮다는 말에 나는 힘을 얻고 용기를 내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자신이 없는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비록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글씨와 그림이 정말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냥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라 이렇게 어떤 결과나 사람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하고 있다.
나의 아이의 말대로 남들보다 못 하면 어떻고, 뭐 이런 게 다 있어라고 손가락질 좀 받으면 어떠랴 내가 좋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이처럼 나는 아이에게 인생을 다시 배우며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자식이 있어서 좋은 다섯 번째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 나 하나만 잘 챙기고 살면 되었다. 즉 내가 먹을 것, 입을 것, 잘 것, 살 것, 놀 것, 공부할 것, 일할 것만 생각하고 살면 되었다.
그러던 나에게 자식이라는 존재가 생기고 보니 나는 내가 먹고, 자고, 입고, 사고하는 것보다 자식이 먹고, 자고, 입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해져 버렸다.
왜냐하면 자식은 아직까지 아니 어쩌면 커서 성인이 돼서도 부모인 내 눈에는 많이 어리고 부족해 보이기 때문에 부모이고 어른인 내가 계속해서 필요한 것을 해주고, 불편함 없이 살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낳은 내 자식이니까 나로 인해 세상에 나온 존재이니까 내가 죽을 때까지 평생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점들이 때로는 나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마음의 짐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 열심히 살게 되었고, 내 인생도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나는 자식이 있기 전까지 내가 하고 싶지 않거나 귀찮으면 나중에 하거나 안 해버렸던 것들을 자식이 있고 나서는 절대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나의 상황과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이들 때문에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고, 열심히 살아야 했고, 예전보다 나 자신과 인생에 더 신경을 쓰고, 정성을 쏟아야 했다.
나는 자식이 아니었다면, 없었다면 그저 적당히 먹고, 자고, 일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자식이 있다 보니 자식을 위해 자식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더 열심히 먹고, 자고, 일하고, 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내 인생도 예전보다는 더 보람차고 값지게 되었다.
이처럼 자식이 있어서 좋은 이유는 사실 내가 이야기한 다섯 가지 말고도 수도 없이 많다. 그래도 나는 이번 글에서는 여기까지만 쓰려고 한다.
나는 이제 그만 자고 있는 나의 자식들 옆에 가서 자식들 얼굴에 내 얼굴도 비볐다가 볼에 뽀뽀도 했다가 꼭 껴안고 자야겠다.
“고마워. 나의 자식들로 태어나줘서.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