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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있다?

어느 늦은 밤 혼자 있는 사무실에 귀신이 나타난다면

by 미세스 박
70. 귀신이 있다.jpg

회사에 귀신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는데 갑자기 귀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순간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고, 으스스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 진짜 귀신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일이 많으니 귀신이건 나발이건 나와도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하는데, 아주 잠시 귀신이 실제로 사무실에 나타나는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귀신이 사무실에 등장을 한다면, 그래 이왕 온 거 차라리 내 일을 좀 나눠서 시켜봐야겠다.


나 say : "도깨비 너는 기안하고, 드라큘라는 외국에서 와서 피곤할 테니 전표만 좀 치도록 하렴. 처녀귀신은 우리 커피 한 잔씩 하게 커피 좀 타 와!"


처녀귀신 say : "지금 나 여자라고 커피 심부름시키는 거야?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여자한테 커피 타라고 하는 거야? 어이가 없네. 이거 조선시대랑 다를 게 하나 없잖아?"


나 say : "미안해. 커피는 각자 알아서 마실게. 너는 서류 정리 좀 도와줘."


처녀귀신 say : "그래 알았어."


귀신들 say : "벌써 12시야. 우리 이제 활동 시간 끝나가. 해뜨기 전에 가야 해. 아직도 일 다 하려면 멀었어?"


나 say : "어차피 다 못해. 그만 하고 가자."


귀신들 say : "좋아. 힘들다. 이제 우리 여기 못 오겠다."


나 say : "왜 다음에도 나 야근할 때 와서 좀 도와줘."


귀신들 say : "됐어. 우리 일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었단 말이야. 다신 안 올 거야. 그리고 너도 이제 야근하지 말고, 집에 일찍 일찍 다녀. 네가 귀신 될 수도 있겠다야."


나 say : "오늘 고마웠어. 잘 가. 뒤도 안 보고 가네."


귀신들 가면서 자기들끼리 say : "와 인간들 요즘 이렇게 사나? 질린다 질려. 귀신 팔자가 상팔자야. 우리 빨리 가서 자자. 오늘 번지수 잘못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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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는 양평에 있습니다. 면이니 나름 시골이라면 시골일 수도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제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더니 이런 귀신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다리 없는 할아버지 귀신이면 몰라도


저는 소위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다른 사기업에 비해서는 조금 더 보수적이고 경직된 분위기가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라는 직원이 어떻게 보면 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요즘 그림과 글을 쓰면서 많이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13년째 그럭저럭 공존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보이지 않는 힘듦과 시련은 계속되지만, 그래도 좋은 동료들 속에서 그들에게 의지하며, 그리고 기본적으로 회사에 대한 강한 애정과 믿음을 가지고 잘 견디고 있습니다.


"과장님, 회사에서 나가면 회사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우리 경희가 자주 이야기해주는데, 주로 집에서 회사에 대한 그림과 글을 많이 써서 못 지키고 있습니다.


회사 이야기도 워킹맘 시리즈처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제 글의 마지막은 언제나 해피엔딩이라는 것 알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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