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리 Nov 20. 2022

남미에서 돈 벌어요(6) 그러니까 다시 우리

#산티아고 #체리컴백 #성공적

아이폰을 다시 구매했다.


올 4월 길거리에서 한순간에 도난당하고 그렇게 속 쓰려한 게 몇 날 며칠인데... 새 핸드폰 카드 결제는 너무 쉽게 이루어지니 오히려 구매하고 나서 허무할 지경이다.


잃어버리는 것도 1초 새 구매도 1초도 안 걸리니 역시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사면된다.  문제는 돈과 추억인데 기기 같은 경우 정말 애착이나 추억이 강한 물건이 아니고서야 더 최신 기종으로 전환이라 오히려 좋고 돈은? 다시 벌면 된다. 차라리 심플하다.


칠레에서 생활한 지 이제 1년 차가 되었다. 지난 1년을 반추해보면 먼저 한국과 칠레 생활을 비교했을 때 칠레에서 머무는 가장 좋은 점은.. 사실 별로 없지만 요즘은 여름과일 시즌 컴백이라는 것. 특히 체리가 돌아왔다. 내 평생 이렇게 뚱뚱하고 달달한 체리는 처음 먹어 본다. 1년 전 칠레에 도착했을 때 한참 체리 시즌이었다. 그때는 그게 '시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칠레에 오면 일 년 내내 체리 포도 등 우리가 한국 대형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칠레산 과일을 마음껏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에 4계절 기후가 있으니 과일도 '시즌'이었다.


한철... 항상이라고 생각했는데 항상이면 좋겠지만 한철인 것들이 있다. 인연도 그렇다. 요즘 들어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더 자주 생각한다. 모든 인연에도 다 때가 있는 법. 오래 살진 않았지만 강산이 3번 변하는 시기를 지나다 보니 이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재밌는 건 끝난다고 생각한 것도 다시 돌아올 때가 있다. 인생 참 재밌다.


최근에 필라테스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과거에 배운 현대무용과 요가는 흐름이 중단되면  원래 배웠던 몸과 리듬을 따라가지 못해 더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계속 멈추곤 했다. 이번 필라테스도 이전의 몸상태로 따라가지 못해 몇 번 하고 정리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조금 흥미를 붙이고 선생님들과도 교감을 하다 보니 이전 현대무용 수업에서 배운 감각과 호흡이 몸에서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과거는 사라진 게 아니라 내 몸 어디선가 기억하고 다시 깨어날 수 있으며 결국 과거가 기둥이 되어 지금 내가 필라테스를 지탱하는구나 하고... 요가도 마찬가지다. 토요일 요가를 끝낸 줄 알았는데 2주 전부터 다시 시작했다. 원래 동작을 따라가려면 더 많은 에너지와 스트레스가 온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수업에서 나는 집중했고 땀이 흐르고 정신이 맑아지고 있었다.

다시 생에 감사함을 느꼈다.


해외 생활 1년 차. 끝인 줄 알았던 요가를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시즌이 돌아온 체리를 먹고, 멈춰버린 냉장고와 부엌에 활기를 넣어 다시 집밥을 시작했으며, 잃어버린 아이폰 프로는 최신 기종으로 새로 다시 사고, 그 덕에 멈춰버린 애플 워치를 다시 연동해 부지런한 삶을 시작하고, 다시 활기를 찾은 아는 브이로그 찍을 영상을 만들고, 중단한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구독을 다시 시작하고,  도난과 멈춰버린 카톡 계정을 다시 복구해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고, 이제 한국에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다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날 생각을 한다.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것... 사계절도 가고 나면 다시 돌아오고 제철 과일도 시즌은 끝이 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다. 끝인 줄 알았는데 쉼인 것... 내가 좋아하는 법정스님 책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조금만 더 따뜻하고 조금만 더 친절해질 일이다. 우리 모두는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이제 몸무게만 다시 복귀하면 된다.


좋아하는 과일가게






작가의 이전글 남미에서 돈 벌어요(5)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