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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Jul 25. 2022

남미에서 돈 벌어요(5)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인생

나는 너여만해 피스타치오



오늘도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은 품절이다. 


토요일 오후 벼르고 벼르다 피스타치오를 먹으러 동네 최애 아이스크림가게에 왔는데 매진이었다. 이럴 때 엄청난 끈기가 발동하는 나라서 일요일 아침부터 달려왔더니 오늘도 없단다. 사실 어제 오후에 마트에서 사 놓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었지만 오리지널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다시 결국 찾아 온 것인데 오늘도 없다고 했다. 결국 이 집 시그니처 티라미수 아이스크림과 새로 나왔다는 직원이 추천해 준 오렌지크림치즈 맛 두 개를 선택했다. 아이스크림 두 맛을 고르는 데도 5분 정도가 걸렸다. 물론 맛있지 이 집은 뭘해도 기본은 가고 아니, 기본 이상에다가 분위기에 맛에 서비스에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곳이니까. 그러나 오늘은 지난 여름 처음 먹었을 때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던 피스타치오여야만 했다. 새로운 크림치즈도, 시그니처 티라미수도, 며칠 전 마트에서 사놓은 수제 피스타치오도 이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피스타치오를 대체할 수 없었다. 


사실 가끔 무언가 필요할 때, 그것이 부재하거나 혹은 당장 구할 수 없어서 대체품을 사는 경우가 있다. 혹 신상품이라던가 가격이 좀 더 저렴하다던가 등의 이유로 대체품을 사곤 한다. 물론 새로움이 주는 기쁨도 적지 않다. 신선하고 새롭고 색다르다는 느낌이 주는 기쁨. 그러나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항상 돌아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갈 수록 취향을 바꾸는 것은 어지간한 임팩트가 아니고서야 어렵다. 주요 브랜드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의 취향과 입맛을 잡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취향은 잘 변하지 않는다. 어릴 때 길들여진 입맛이, 이를 테면 엄마밥 혹은 어릴 때 즐겨먹던 과자를 평생 찾는 이유고 그렇기에 각종 깡들(새우깡, 고구마깡, 양파깡 등등), 홈런볼, 꼬깔콘, 포카칩이 여전히 판매량 우위에 있는 이유다. 맛도 맛인데 추억 또한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허니콤보는 대단하다. 처음 맛보고 2년 내내 허니콤보만 먹었다. 물론 사이사이 닭강정도 먹고 일정 시간이 지나 다시 처갓집 양념통닭으로 돌아갔다).


 초등학교때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나를 운동장 끝에서 기다린 엄마의 모습. 핸드폰도 없던 시절 공중전화를 붙잡고 행여 엄마가 나를 못 찾고 밖에서 기다리며 속상해할까봐 그런 엄마를 걱정했던 초등학교 3학년의 내 마음. 중학교 2학년 사춘기 시절 엄마가 문화센터에서 배워온 파스타를 나에게 해주며 내가 먹는 모습을 내내 바라볼 때의 그 눈빛은 지금까지도 오늘의 나를 지탱한 힘이다. 좋다가도 밉다가도 하는 인생사에서 가족들과 산책하고 다같이 둘러 앉아 저녁 먹는 시간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진 인연들이 있을지언정 인생의 어느 한 때는 그런 인연들로 인해 힘든 시간도 웃으며 살아냈다는 생각을 하면 또 그렇게 밉지도 않고 그런 때가 있었구나 감사했네 싶다. 너무 힘들었을 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 말 한마디도 과거의 기억이고 추억일테지만 미래를 위한 추동력이자 연료가 되기도 한다. 너무 포기하고 싶었을 때 들었던 노래는 나를 지탱하게 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들었을 때 갑자기 나는 과거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말그대로 추억여행이다. 꼭 물리적인, 미래의 여행만 행복을 주진 않는다. 가끔은 과거의 추억팔이 여행이 순간의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곧 현재다. 


추억은 힘이 없다고들 한다. 추억은 과거니까. 그리고 미화되면 결국 본질적인 사실이 왜곡되고 그래서 그걸 추억이라고 하니까. 그런데 요즘은 추억으로 사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분 나쁜 기억에 과거에 얽매이고 고통받으며 사는것도 인생인지라 끊임없이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향하는 자기 반성과 명상이 필요한 것이 삶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추억으로 살기도 한다. 왜 5년을 사이 좋다가 한번 틀어지면 그 5년의 시간을 부정하고, 30년을 잘 지내다가  틀어지면 그 30년을 부정할까. 그래도 5년은 잘 지냈고 30년은 아무 문제 없었는데 꼭 마지막만 나쁘다고 해서 좋은 시간마저 부정해야할까.  5년이라도 잘 지내고 30년이라도 행복했음 그걸로도 괜찮지 않나 싶다. 이제서야. 


추억을 과거로만 여겨 부정했던 시간이 있었다. 과거는 사라졌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늘과 내일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이렇게 저렇게 바쁘게 치여서 살다보니 특히 해외에서 밥벌이를 하다보니 한국에서의 시간과 기억 추억을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불만족은 아니다. 고정수입과 여유로운 점심시간, 넓은 집, 동식물로 가득찬 좋은 동네, 친절한 사람들,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식재료, 사이좋은 직장동료, 출퇴근 산책할 수 있는 여유, 긴긴밤 그리고 뜨거운 햇살... 사실 삶의 질로만 보면 지금 해외생활이 더 좋다. 그러니 당장 가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면 생각한다. 그리하여 한국에 가 2주 동안의 휴가를 보내고 나면 어쩌면 그 추억은 미래의 해외생활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것이라고 이제는 확신한다. 


한국에 가면 목욕탕도 가고 한강에서 주구장창 늘어져 있다가 치킨도 시켜먹고 밤에 서부지검 뒤 신촌 설렁탕에서 진로도 마시고, 동네 술집에 가서 회무침과 화요토닉을 마셔야지 등등 결국 추억과 과거의 시간으로 미래의 계획과 시간을 꿈꾸고 기대하고 고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면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결국 추억을 기반으로 한 미래가 지금의 희망이고 기대가 되었다. 중독성 강한 현지의 그 어떤 감자칩도 어릴 때부터 먹던 한국 과자 판매량 부동의 1위 새우깡을 대체할 수 없었다. 이 곳의 뛰어난 최고급 와인과 맥주도, 한국 여름밤 한강에서 편의점에서 시시콜콜하게 마시던 카스를 대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꼭 이 집의 피스타치오여야만 하는 그래야만 만족하고 직성이 풀리는, 대체는 대체일뿐 본질을 대신할 수 없었다. 이렇게 오늘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다시금 깨달으며, 아이스크림 속에서 인생을 다시 배운다. 그래서 그 피스타치오를 먹으러 조만간 다시 가고야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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