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밀집해 있는, (비록 소도시일지라도) 소위 학군지역이다. 오늘 방황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마주친, 4시에 하교하는 초중학생을 보니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나이가 귀엽기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숙제 같은 인생에 짠하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성인이 된 직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저 아이들이 내 새끼뻘 된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한 손에 칭따오 한병, 다른 한 손에는 간만에 서점 외출로 구매한 네 권의 책, ‘탱자’,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 스님의 주례사’ ,’ 무민마마의 가사도우미‘를 들고 집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인생을 몰라 사랑을 찾아 징징대는, 글 속에서 진리를 한번 찾을까 싶어 구매한 오늘의 책 4권과 내 자식이 될 수 도 있었던 저 아이들. 우리는 서로 스쳐지나간다. 저 아이들보다 20년 더 삶을 살아왔음에도 나는 여전히 애새끼구나.
퇴사 후 나는 글과 말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지금까지 20년을 공부’해야만’ 했는데, 이제는 잘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싸매고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인데, 일하는 내내 아는 척, 똑똑한 척하는 것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어느 것도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밥벌이를 위해 내가 해야만 하는 공부는 하루라도 흐름이 끊기면 처참하게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가성비 최악의 외국어인지라, 공부한 시간에 비해 단어와 말을 잊어버리는 속도가 야속하다. 일과 동시에 공부를 놓은 지 이제 50일째다. 이 시간을 복구하려면 앞으로 100일 더 고생해야 하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하지 않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알면서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불안으로 나는 요즘 매일 새벽 3시 40분에 잠에서 깬다. 그러다 멀뚱한 상태로 두세 시간 흘러 동이 트는 것까지 보거나, 운이 좋은 날은 여기서 한두 시간 정도 더 잠에 들다가 10시 전에 일어난다.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사과나 요구르트를 먹고 나서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생긴 아늑한 카페로 혼자 가서 아이스라떼를 한잔 마시며 멍 때린다. 백수 생활 중 내가 유일하게 좋아서 하는 루틴이다. 아이스라떼와 맥주는 요즘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유일한 음식으로, 봄을 타는지 불안한 미래 때문인지 사랑 가지고 징징거려서 인지 입맛을 영 잃어 덕분에 살이 쭉쭉 빠졌다. 나 이렇게 방황한 적이 있었나.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수산물 시장에서 사 온 오징어 30마리를 때기고(지역 방언) 있었다. 오늘로부터 한 달 후면 34년 전 저 사람이 딸 셋의 아버지가 된 날이 온다.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아빠가 다듬은 오징어 다리와 내장으로 잡탕을 끓였고 칭따오를 한잔씩 노나 마셨다. 그리고는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반야심경을 필사했다. 그렇게 퇴사와 귀국 후 이어진 나의 50일간의 은둔 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다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