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건너 고양이별로 떠나보내던 날의 기억+[신부전 증상 테스트]
1년을 채 못 넘길 거라고, 의사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병명은 신부전이었다.
아이는 병원에 주기적으로 가야 했다. 나는 약 먹이기 달인이 됐다. 강박적으로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사진을 더 찍어둘 걸 후회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한 해를 넘겼다. 2년, 3년 점점 마음이 말랑해져 갔다.
“어라, 어라 하다가 10살까지 사는 거 아냐?”
웃으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건 소망을 담뿍 담은 진담이었다. 2년이 지난 시점부터였나 눈에 띄게 아이의 상태가 달라졌다. 윤기나던 털은 제멋대로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이따금 눈이 돌아가 흰자가 자주 비치고, 기운없이 시원한 곳에 가만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급수기는 찾아오는 이 없이 물을 뱉어내고, 밥통 속의 사료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원래도 사람의 곁에 붙어있기보다 원할 때만 얼굴을 비치는 아이였으나 시선을 돌리면 한 번씩 눈이 마주치곤 했는데. 실루엣조차 눈에 걸리지 않는 시간이 늘어났다. 차디찬 바닥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그 순간’이 온 건지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 때도 있었다. 약과 밥을 부지런히 챙기는 것 외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2020년 여름, 이전과는 무언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날도 아이는 시원한 현관 앞에 자리 잡고 누워있었다.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는 게 괜히 마음에 걸려 푹신한 베개 위로 올려주었다. 원래 내 베개였는데 자꾸 본인 침대로 쓰는 바람에 오래전 내어준 베개였다.
“저기 있는 것보단 여기가 더 낫지?”
그 자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박차고 나갔으련만 아이는 갑자기 눈을 반짝 뜨며 날 바라봤다.
“갑자기 이렇게 눈을 예쁘게 뜨고?”
얌전히 쓰다듬을 받던 탱이 눈에 다시 힘이 풀린다.
“반짝 일어날 것처럼 눈을 푸르르하더니, 안 일어나네… 아이 예쁘다- 아이 예뻐, 우리 탱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 자주 하던 말을 부러 오버스럽게 건네본다. 가만 쳐다보는 눈과 작게 살랑거리기 시작한 꼬리를 보면서 다시금 생명력을 발견한다. 본인을 예뻐하는 소리에 반응하는 게 반가웠다.
곧 아르바이트를 가야 할 시간이다. 왜인지 모르게 그 앞을 떠나기가 힘들었다. 최대한 머무르고 싶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도 같다. 현관문이 바로 보이는 자리, 아이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이제 가도 돼, 더 이상 아프지 말자.”
조금만 더 같이 있자는 말도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미안했다. 더 이상 괴롭지 않길 바라는 것도 사랑이구나.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게 보내줘야 할 때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시간을 더 치체하기가 어렵다, 싶을 때까지 머무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눈을 보면서 인사를 건넸다. 뒷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뒷걸음질 치며 문을 닫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평소와 다르게 마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잘 있냐고.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의미하는 건 너무나 분명했다. 엄마는 말했다.
퇴근해서 집에 왔을 때, 내가 올려준 베개 그 위에 얌전히 잠들어있었다고. 다녀왔다고 쓰다듬는 순간 알았다고. 차갑고 뻣뻣한 것이 평소와 달랐다고.
퇴근길 버스 안이 귀가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려 다행이었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 숨어들었다. 집 가는 인적 드문 골목길에선 숨을 곳이 없었다.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느려졌다. 또 한편으론 보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집에 들어선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엄마가 잘 싸놓은 포대기를 봤던 것 같다.
다음 날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한 생명이 떠나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그 고요함이 야속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장례식장을 찾아봤다. 여러 업체 중에서 거리도 적당하고, 가격과 서비스도 괜찮은 곳으로 정했다. 직원 휴게실에 들어가 ‘당장 내일 장례가 가능한지’ 연락했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떠난 아이가 혹여나 상할까 봐 걱정되어 최대한 서둘렀다. 다행히 가능하다는 답변에 예약을 잡고,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알렸다. 일을 하다 작은방 안에서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예약을 잡고. 다시 나가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하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빠 차를 타고 양산에 위치한 한 반려동물 장례식장으로 갔다. 살면서 처음 간 장례식장이었다. 아이를 맡기고 간단한 정보를 적는 종이를 받았다. 5가지 정도 적었던 것 같은데 이름과 나이를 적은 것만 기억이 난다. 아이의 나이를 적는 칸에 5살이라 적었다. 고작 5살,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출근 전 눈에 담았던 모습 그대로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평소 좋아했던 턱밑, 콧잔등, 등을 매만졌다. 이제 편안해 보여 다행이다. 슬픔과 안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여느 고양이가 그렇듯 아이는 꼬리 만지는 걸 싫어했다. 그날 마지막 인사를 하며 언니는 하염없이 꼬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가만 그 모습을 보다가 ‘사심 채우냐고’ 타박하며 웃었다. 그 와중에도 웃었다. 왜 장례식장이 마냥 울음으로 가득한 공간이 아닌지, 말소리와 추억과 웃음이 함께 떠다니는지 알게 됐다.
빨간 불꽃을 보면서는 ‘너무 뜨거울 텐데’ 생각했다. 작은 나무상자를 받아들었다.
자주 듣는 팟캐스트 <비혼세>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항상 주머니에 있는 돌처럼 손에 쥐고 굴리며 살아가는 거라고. 그날 이후로 자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에 쥔 돌 때문인지 길가에 있는 작은 존재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길고양이를 누구보다 잘 발견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으론 '또 다른 돌을 쥐기에는 내 손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했다.
2년이 지나 내 손가락 반대편에서 핑크 젤리를 올리는 새하얀 고양이를 만났다. 그즈음 소중한 존재를 만들 용기를 다시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처음 집에 온 날, 작고 동그란 모습에 '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애정만큼 갤러리에 사진과 영상이 쌓여갔다. 이부자리를 공유하며 온기를 나누고 투닥거리기도 하면서 이 사랑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다. 언젠가 올 그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겁이 나지만 함께 보낸 시간과 행복이 더 가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이렇게 채워낸 사랑으로 다음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사랑이 모두의 집을 가득 채운 걸로 모자라 마구 흘러넘쳤으면 좋겠다.
비집고 나온 사랑이 길가에 쏟아져 곳곳에 숨은 작은 아이들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
신부전은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 신장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에요. 신장은 몸 안에 노폐물을 거르는 필터 역할을 합니다. 즉,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신장의 기능이랍니다.
신부전에는 두 가지 케이스가 있어요. 급격하게 진행되는 급성신부전과 몇년에 걸쳐 진행되는 만성신부전입니다. 제 고양이는 만성신부전이라 내원했을 당시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만성신부전의 경우 증상이 눈에 띄게 나타날 시기에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었을 수 있어요.
정기적인 병원 검진이 제일 중요하지만 의심해볼 수 있는 증상 몇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 병원에서 들은 가장 중요한 팁!
내 고양이 등 가죽 부분을 잡았다 놓아보세요. 가죽이 재빠르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정상,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아이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음수량이 해당 테스트에 영향을 준다,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 음수량이 줄고, 입맛이 떨어진다.
✔ 활동량이 적어진다.
✔ 토를 하거나 화장실 외 장소에 배변실수를 한다.
✔ 모질이 나빠진다. (단순 그루밍 문제가 아니라 삐죽삐죽하게 털이 뭉칩니다.)
위의 사항들이 모두 해당된다면 병원에 건강검진 한 번 받으러 가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글을 마치며 모든 집사님들이 고양이와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Cover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