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도 있었고 때론 부러움도 있었지만, 인생 사는데 큰 불편함 없기에 굳이 명품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도사실이다. 얼마 전 문득 혼자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있었다. 지천명 나이 오십이 면 인생을 터득한다 하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동안 살면서 하고 싶고, 해야 하고, 안 하고 못 해본 것들이 너무나 많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때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
가끔, 나 지금 까지 뭐하고 살았지 할 때, 그럴 때 말이야.
참! 외롭고 허탈하고 그냥, 그런 느낌들, 그렇다고 특별히 잘못 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괜히 서글퍼지더라고.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래! 해보자.
더 늦기 전에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SNS에서 명품 셔츠를 보게 되었다. 아주 유명한 브랜드의 셔츠였다.
그래! 이걸 사자, 명품 셔츠 하나 있으면 그것도 괜찮겠다.
그리고는 만만찮은 가격에 놀라며 여기저기 명품샵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요즘 광고에 많이 나오는 명품샵 어플을 설치하고 결국 고가의 명품 셔츠를 주문했다.
평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소비를 한 것이다.
아내가 알면 난리가 날 것이다. 물론 아내 또한 명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속이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외배송으로 2주 좀 안되게 기다렸다.
드디어 생전 처음 명품 셔츠를 개봉했다.그리고는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폼을 살폈다. 별거 없는데,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옷을 입고 나가려니 눈치도 보이고 가슴도 조금 두근거렸다. 아마도 사람들이 알아볼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어린아이 같다.
며칠을 그렇게 입고 다니다 보니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항상 명품과 가까운 사람처럼 말이다.
사람이란 존재가 참 그렇다.
처음 신는 신발에 뒤꿈치가 벗겨지고,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방귀를 트는 것이 어렵듯이 처음엔 무엇이든 익숙지 않고 어색하다가도 금세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것이 사람의 감각인가 보다.
옷이 편해지다 보니 구김이 가더라도 그냥 입고 다닌다.
이 옷의 매력은 그런 건가보다, 말 그대로 빈티지다.
비록 수 십만 원을 호가한다 하더라도 이 옷의 용도가 빈티지 이면 빈티지스럽게 입으면 된다.
나는 커피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 운전을 할 때에는 항상 커피 향이 차 안에 있었으면 하는 정도로 중독 그 이상으로 좋아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커피 맛을 잘 알아서도 아니요 커피의 기원이나 역사를 잘 알아서도 아니다.
단지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 이상의 생각과 기쁨 그리고 낭만을 주기 때문이다.
아들 녀석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엔 항상 정해진 풍경이 담긴다. 매일 가는 가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는 집에 올 때까지 홀지락 거리며 음악을 듣는다.
더욱 좋은 것은 따스한 봄, 아침 햇살이 마치 내 삶에 배경음악이 돼 듯 나를 비추어 줄 때, 그 이상 황홀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날도 어제와 같이 아들 녀석을 학교에 내려 주고 커피 한 잔을 받아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집에 다 와갈 때쯤, 커피를 훌짝이던 목구멍이 요동을 치며 재채기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이럴 수가, 세상에 난리가 났다.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온 커피는 자동차 앞유리 그리고 핸들은 물론 이미 익숙해져서 너무 편 해저 버린 빈티지에도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물티슈로 대충 닦기엔 너무나 크게 사고를 쳐버렸다.
시트는 이미 다 젓어 있었고 엉덩이도 축축이 젓어버렸다.
그렇게 혼돈의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차!이거 명품이잖아.
어허! 큰일이네, 어쩌지!
우왕좌왕, 황급히 물티슈로 옷에 묻은 커피를 문질러 댄다.
그러다 잠시.
어! 커피 묻은 티가 하나도 안 나네, 옷 색깔이랑 커피색이랑 비슷해, 티가 안나잖아.
그랬다, 커피색 빈티지 명품 옷에 커피가 잔뜩 흘렀는데도
티가 하나도 나질 않는다.
바지가 젓은 것만 아니면 지금 당장 누군가를 만나도 될 정도로 아무티도 나지 않았다.
다만 커피 향이 옷에 찌들지 않도록 물티슈로 깨끗하게 문질러 주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아! 이 옷이 흰색이나 눈에 잘 뜨이는 색이었다면 많이 속상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잠시
"앗! 명품 옷" 하고 말았을 뿐 아무런 격함도 없었다.
집에 와서는 그냥 옷걸이에 걸어 베란다에 말려두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또 그냥 그 옷을 입었다. 그 비싼 셔츠에 커피를 쏟고 드라이클리닝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입고다녔다.
"명품" 누군가 나에게 당신에게 명품 셔츠는 어떤 의미입니까라고 묻는 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에게 명품 셔츠는 커피를 쏟아도 클리닝을 하지 않는 옷이라고 말이다.명품이니까 소중하게, 안절부절, 입을 때마다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면 그것은 명품이 아니라 중세시대에 여자들이 입었던 코르셋과 같은 족쇄일
뿐이다.
무엇을 입어도 명품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고 무엇을 입어도 싸 보이고 어색한 사람이 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다윗 왕이 그러했다고 한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 이스라엘 군이 창도 한 번 못 휘둘러 보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때 키도 작고 왜소한 다윗 이, 이스라엘의 1대 왕인 사울에게 자신이 나가 골리앗을 물리치고 오겠노라 했다. 그 전쟁터에는 다윗의 형도 있었고 전쟁터에서 뼈가 굳은 사울의 장수들도 가득했다.
그런 곳에서 웬 꼬마 목동 하나가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호언장담을 할 수 있었을까.
어린 다윗이 하도 큰 소리를 치니 사울 왕도 얼척 없어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윗의 출전을 허락했다.그리고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낡은 갑옷과 투구를 다읫에게 입혀 주었다.
다윗의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왕이 자신어 갑옷과 투구 그리고 칼을 준다는 것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도 있다는 뜻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이 준 옷과 검을 벗어버렸다. 이유는 단 하나. 사울 왕의 갑옷과 투구가 너무 커서 자신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왕이 준 것이라 해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벗어 버릴 줄 아는 용기, 그리고 다윗이 가지고 있던 편안함 "샬롬"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다윗을이스라엘에서 또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큰 별로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아무리 값 비싼 명품이라도 자신에게 편하지 않다면 벗어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명품이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다만 사람이 명품을 만들 뿐이다.
나는 누구나 명품에 커피를 쏟아도 아무렇지 않게 지니치는 "평강이" 우리들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