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우울하다. 비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내가 비 때문에 우울해하지는 않을 것이고, 벌써 며칠째 잠을 설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는 6년 전에 이사를 왔다.이사를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윗집의 성향을 파악하게 되었다.밤 10시가 넘어서 부터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새벽 3시 4시 가 넘어서야 조용해진다.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러나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소리가 매일 밤 들려왔다.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발 뒤꿈치 찍는 소리.
이 웃간에 얼굴 붉히고 싸우는 것도 싫고, 아이들이 있는 집에 저 정도야 이해 못하겠나 싶어 2년을 참고 지냈다. 때마침 이직을 하게 됐고 물류 관련 업무의 특성상 운전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철강회사 물류 란 것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고 육체적으로도 피곤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간신히 몇 숟갈 뜨고 나면 골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고단하게 잠이 들어도 윗집에서 쿵쿵대는 소리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귀마개를 하고 잠이 들어도 소용이 없다.운전대를 잡고 깜박 조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참다못해 도저히 안돼 겠다 싶어 편지를 써서 조용히 문 앞에 불에 놓였다.
쿵쿵 쾅쾅 또다시 같은 시간이 되니 여지없이 소리가 들린다.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나고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 그때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고 민감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잠을 설치고 피곤한 몸을 추켜 세우고 출근을 한다. 그렇게 2년 하고도 6개월이란 시간을 참은 것 같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돼겠다 싶어 아이스크림 몇 개를 사들고 찾아 올라 갖다. 언성은 높이지 말자 조근조근 이야기하면 알아듣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아주머니 한 분과 남매 그리 강아지 한 마리가 문도 다 열지 않은 채 경계하는 모습으로 고개만 빼꼼 내민다.
- 죄송합니다, 아랫집 사는 사람입니다.
/ 네! 무슨 일이세요?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절대 화를 내거나 위협을 했다거나 하지 않았다.
- 저희 집은 뛰는 사람이 없는데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고는, 더 이상 말하게 되면 나를 컨트롤하기 힘들 것 같아, 다시 정중히 부탁드리고 아들이 고3 수험생이니 저녁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 사람 같지 않은 어눌한 말투의 아주머니 초등학생인 듯 보이는 남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있는 집이 다 그렇지, 부탁했으니 이제 좀 나아지겠지. 쿵쿵 쾅쾅, 이 삼일 조용한가 싶더니 또다시 시작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그렇게 잠을 설치고 귀마개를 하고 다시 2년을 넘게 참았다.여름에도 문을 열어 두지 못하는 지경이다. 어쩌다 문이 라도 열고 잘 때면 12시가 넘어 들려오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베란다 창문으로 세어 들어온다, 또다시 창문을 닫으면 그때부터는 진동 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한 번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노랫소리가 들리길래 잠을
깼다. 창을 열고 도대체 누가 이 시간에 노래를 크게 하나 들어봤더니 윗집에서 들려오는 노래방 반주기 소리였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겠다 싶어 처음 112에 신고를 했다. 경찰관이 출동을 하고 조용히 처리되었고 신고 접수 처리에 대한 문자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6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층간소음 문제로 처음 112에 민원을 넣었다.
- 아니요! 선생님 저희 아파트 관리실에 도 소음 분쟁 조정 위원회가 있어요, 하지만 소용이없고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올라가서 언성 높이고 소란 떠는 것보다, 출동하셔서 주의라도 주시면 그다음 상황을 보고 제가 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 선생님! 저희 경찰에는 생활소음 출동 매뉴얼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상황실 직원.
- 아니! 선생님, 지나가던, 고양이, 개를 잃어버려도 찾아주는 경찰이 사람이 민원을 제기했는데 이렇게 밖에 대처를 못하나요?
/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고요......
-?......
-오죽하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겠습니까?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 뚝!
전화가 끊겼다, 말도 채 끝나기도 전에...... 황당했다.
도대체 경찰의 매뉴얼이 무엇이길래 칼부림이 나고 살인사건이 나야만 출동하는 것인가?
심각한 층간소음 문제로 인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시국에 경찰의 출동 매뉴얼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무엇보다 신고 접수 상황에 대하여 아무런 통보도 없이 대화 도중 전화를 끊어버린 상황실 직원에게 민원인 응대 대응 매뉴얼에 그렇게 되어 있냐고 묻고 싶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좀 전에 통화한 경찰관과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 죄송합니다! 전화는 바꿔드릴 수 없습니다.
- 혹시! 통화 내용을 들으셨나요?
/ 네, 신고는 접수되었습니다.
- 통화 중에 상황도 통보하지 않고 그냥 끊었습니다.
- 어떻게 조치가 되었는지는 알려주고 끊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죄송합니다, 통화내역 들어보고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녹취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언성을 높이거나 크게 화를 낸 것도 아닙니다. 몇 번을 설명하고 부탁드렸는데......
새벽 5시가 넘어 이런 전화를 하고 있는 내가 처량해졌다.
경찰관들 힘든거 왜? 모르겠나. 밤새 민원인들 응대하다 보면 짜증도 나고 힘도 든다는 것 왜! 모르겠냐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신고 접수 상황은 알려주고 전화를 끊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에 계속 보도되는 김건희 여사의 동물권? 동물의 보호받을 권리, 동물의 권리도 세월이 흐르며 진보하는데 경찰 매뉴얼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경찰에 민원을 넣은 사람이 이러한 상황을 겪게 되는가 말이다. 사람의 일상이 사람의 수면권이 동물의 보호받을 권리 만도 못한 것인가? 계속해서 보도되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강력사건에 경찰의 대처는 어떤 진보한 대책을 내세울 것인지? 경찰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물권 보다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무척이나 서글퍼지는 아침이다.
경찰관의 태도를 문제 삼거나 경찰의 안일한 대처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난! 동물보다, 개나 고양이보다 먼저 보호받아야 할 존엄한 인간이며 권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대한민국 경찰을 믿고 살았다. 지금 내가 불신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의 매뉴얼이다. 생활소음에 대하여 일일이 경찰이 개입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이해한다. 인력도 부족하고 너무 빈번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보고 이웃 간에 원수가 되어야만 발전 없는 경찰 매뉴얼이 바뀔까? 이런 생각 자체가 무리수 일지도 모른다. 피 흘림의 현장에서 , 한 사람의 우리의 이웃이 살인자가 되고 범죄자가 되는 현장에서 시민의 안전을 뒤전으 로 하고 도망치는 경찰,
민원인의 전화에 매뉴얼 대로만 대처하는 경찰.
마음은 움직이지 않고 행정상 절차 만을 중요시하는 경찰.
난! 매뉴얼대로 하는 로봇 갑 보다 마음이 움직이는 따뜻한 경찰을 더욱 신뢰하고 싶다.
신고를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6시 조금 넘었을까, 초인종이 울린다. 순간 윗 집에서 내려온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그리고 난, 윗집 사람을 본 것보다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관 두 명이 문 밖에 서 있었다. 신고 처리 내용을 일일이 문밖에 서서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무리 해가 빨리 떠서 밖이 환하다지만 이게 뭣 하는 쓸데없는 친절 인가? 경찰관들의 목소리가 아침을
깨우고 있었고, 나는 신고로 인해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지,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로 다 들리는데 이렇게 조용한 시간에 복도의 창문도 열려 있는데 충분히 윗집에서 들리 는 것은 당연했다.
경찰의 매뉴얼에 생활소음 신고자에 대한 신변보호 노출 주의 매뉴얼은 없는 것인가? 좀 전의 112 상황실 직원과의 문제를거들먹거리며 이해해 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게 동료의 안위는 걱정하면서 신고자의 안위는 내팽겨 쳐버린 경찰의 자기 보호와 신고자의 안전은 뒷전인 경찰의 조치에 또 한 번 실망했다. 보복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인지. 지금도 심장이 떨리고 보복은 하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