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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난좌

2020.12.06

by 공씨아저씨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장수 신농 영농조합의 사과를 포장할 때 종이 난좌를 사용한 지 꽤 되었습니다. 지금은 종이 난좌를 사용하는 곳들이 종종 보입니다. 대기업에서도 종이 난좌를 사용하는 곳이 있어 보이고요. 포장재의 변화로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메이킹하려는 그린워싱 마케팅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100배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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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재 관련 포스팅이 몇 해 전 브런치와 네이버 메인에 등장했던 탓에 종이 난좌 구입처를 물어보시는 연락이 꽤 많습니다. 참고로 종이 난좌는 대부분의 농가에서 사용하는 스티로폼 난좌 가격의 3배 정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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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하나씩 싸는 개별 캡도 벗어버리고 종이 난좌를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끊임없이 포장 쓰레기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온라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종이 난좌 사용하는 곳이 별로 없어 원래 자재를 공급받는 공장에서 더 이상 종이 난좌 생산을 안 한다는 통보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판매하는 사과는 21과 와 24과 2종류인데 (올해는 이 사이즈의 사과가 대부분이라서요) 저희가 준비한 종이 난좌는 21과 짜리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선 21과 짜리부터 우선적으로 출고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올해 후지 사과 주문하신 분들은 모두 21과 짜리를 받으셨을 겁니다.


24와 짜리는 흔히 시장에서 7 다이라고 부르는 크기로 작은 크기의 사과에 속합니다. 야구로 치면 마이너리그 선수에 속합니다. 저희는 메이저리그 선수로 분류하지만 말이죠. 그래서 24과 짜리 종이 난좌를 잘 생산을 안 해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재 판매하는 21과 짜리 사과의 판매가 종료되면 24과는 어쩔 수 없이 일반 스티로폼 난좌에 포장되어

출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원래 올해 농사가 정상적으로 되었으면 24과 짜리는 그리 많지 않아야 할 상황입니다만 올해 날씨 때문에 작황이 좋지 않아서 작은 크기의 24과 짜리 사과가 이례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저 때문에 계속 종이 난좌를 사용하고 계신 농가에게도 참 미안하기도 합니다. 유난스러운 유통인을 만난 탓에 장수 신농이 고생이시죠...


종이 난좌가 업계 표준이 되어서 이러한 자재 걱정 없이 사과를 팔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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