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0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5년 정도 된 일일 겁니다. 여름에 자두 판매할 때였어요.
포모사(후무사) 자두 배송을 받으시고 손님 한분이 화가 나서 전화를 하셨어요. 포모사는 원래 껍질이 약해서 수확할 때 나뭇잎에만 스쳐도 갈색으로 변하는 특성이 있는 녀석입니다. 그래서 성장촉진제를 주고 대과로 키워서 하나하나 그물망에 싸서 판매를 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품종 특성에 대한 상황 설명을 드렸지만 막무가내셨어요. 그러면 박스 안에 인쇄물로 이에 대한 안내가 들어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막 화를 내셨습니다. 덧붙여서 한 말씀을 더 하시더라고요... "내가 한살림 10년 조합원인데..." 한살림에서도 이렇게 다 한다고 말이죠. (제가 아는 한살림 조합원들은 애써 쓰레기를 만들어 달라고 하실 분들이 아닌데 한살림을 욕되게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저희는 온라인 기반 가게고 온라인은 온라인에서 모든 걸 다 끝내는 게 맞다고 설명드렸습니다. 그래서 상품 페이지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사이트 상품페이지를 보시면 다 공지되어있는 내용인데 그걸 꼭 인쇄해서 넣을 필요가 있느냐고 여쭤봤죠. 먹는 방법, 생산자의 감동스러운 편지 등 과일 박스 안에 홍보물을 함께 넣으면 좋지 않냐는 제안을 해주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예전에 콜라비 판매했을 때 당시로서는 워낙 생소했던 채소라 먹는 방법을 인쇄해서 함께 동봉했던 적 한 번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어떤 인쇄물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쇄물을 함께 넣어서 보내면 소비자들이 받으셨을 때 잠깐 기분이 좋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예쁜 쓰레기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상품 포장할 때 여러 가지 인쇄물을 함께 넣었을 때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예쁜 쓰레기가 될 것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환경 포장재라는 것은 지구 상에 없습니다. 만들어지는 순간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포장재입니다. 어떻게 안 쓰고, 덜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안 만들 수 있는 것들은 안 만들려고 하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공씨아저씨네 사이트 첫 화면 배너에 '예쁜 포장 쓰레기를 줄이겠습니다'라는 문구는 저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