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12월 판매하는 만감류가 사라진 올해 밀감으로 버텨야 했던 12월이었습니다.
올해 감귤 판매를 시작하며 3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첫째, 협력 농가 감귤은 남기지 말고 다 판매할 것.
둘째, 가격은 최대한 지킬 것(할인하지 않을 것)
셋째,...
다행히 올해 협력농가의 감귤밭에 남은 감귤은 이제 '0'이라는 숫자에 근접하게 다가왔고, 가격 할인 없이 끝까지 버텼습니다. 감사하게도 역대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무척 어려웠습니다.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려했던 대로 학교 급식 파행으로 친환경 감귤이 변수로 등장했습니다. 12월을 넘기고 얼마 되지 않아 학교 급식으로 납품을 하던 친환경 감귤 농가들이 앞다투어 가격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가장 답답한 건 그분들이겠지만 가격을 던지는 것은 그 어떤 해결책도 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팠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학교급식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공공의 영역에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민간의 영역으로 끌고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먹어야 할 친환경 농산물들을 일반 소비자들이 싼값에 소비하는 모양새는 좀 이상합니다. 이미 전반기에 똑같은 문제를 겪었지만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본인들은 의도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당장 너무 힘드셨겠죠. 그러나 친환경 급식 농가들이 하나로 뭉치면 같은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소규모 영세 농민들에게는 그 또한 넘기 힘든 거대한 권력이 됩니다. 농민의 발목을 잡는 건 농민이라는 이야기가 또 나오게 됩니다.
진정 농민을 위한 길은 가격 할인 없이 정당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닐까요? 무엇이 농민을 위한다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마지막 세 번째 결심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요.
셋째, 친환경 감귤 가격 최대한 끌어올리기였습니다.
실제로 올해 역대 최고가로 농가 매입을 진행했습니다.
SOS, 농가 돕기 등의 워딩은 2021년에는 제발 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더 이상 최문순 토마토는 나오지 말아야겠지요.
올 한 해는 너무 힘든 한 해였지만 업계의 민낯을 오롯이 볼 수 있어서 좋은 약이 된 한 해이기도 합니다. 제 자신이 좀 더 가벼워진 것 같아서 홀가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