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만 봐도 알 수 있는 복숭아 판별법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봄은 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너도 나도 꽃구경 다니기에 바쁜 시절이죠. 그러나 과일장수에게 꽃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인지라 우리가 잊고 있지만 우리가 먹는 과일은 모두 꽃에서 시작합니다. 꽃이 피고 씨방이 열매로 결실을 맺으면 우리는 그것을 과일이라는 이름으로 맛있게 먹죠. 그래서 저에게 꽃은 곧 열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꽃은 그냥 보기 좋은 예쁜 것이겠지만 과일 농부에게 꽃은 결실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꽃이 피는 시기 그리고 꽃이 피는 양에 따라 그해의 수확 시기와 작황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요맘때면 복숭아 밭은 적화작업이 한창입니다. 비단 복숭아뿐 아니라 모든 꽃이 피는 과일 농부님들에게 해당되는 일입니다.
적화 작업은 말 그대로 꽃을 따주는 작업입니다. 왜 이 예쁜 꽃을 따버리냐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꽃은 곧 열매입니다. 조금 안 낭만적이게 이야기해서 농부에게는 곧 수익이죠. 나무에 열린 꽃이 모두 다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핀 꽃의 개수만큼 다 열매가 된다면 모든 과일을 콩알만 해질 겁니다. 적화 작업을 하는 큰 이유는 적당한 크기와 수량의 과일만 열리게 하고 과일나무의 수세가 떨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적화작업을 마치고 나면 나무는 초라하고 앙상하게 변해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좀 아쉬울지 모르나 잘 정비된 복숭아 밭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자연상태에서 복숭아를 채집(採集)하는 시대가 아닌 재배(栽培)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맘때는 복숭아 농부님은 매일매일 꽃 따는 게 일입니다.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가 생각나는데 하루에 양영학 농부님이 따내시는 복숭아꽃이 약 30만송이 정도 된다고 하십니다.
30만 송이 복사꽃
2018. 4. 18
공씨아저씨는 경북 청도로 향했습니다. 공씨아저씨가 판매하는 복숭아를 재배하는 복숭아 마이스터 양영학 농부님이 계신 곳이죠. 해마다 요맘때면 늘 이 곳을 찾습니다. 올해는 꽃이 잘 피었는지 올해 수확량은 어떨지 대략적인 가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저에게는 농부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양영학 농부님은 오늘도 적화 작업에 여념이 없습니다.
바닥에는 적화작업으로 떨어진 복숭아꽃들이 마치 풀밭에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내죠. 오늘은 문득 꽃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어요. 그래서 복숭아 박사님 양영학 농부님께 이것저것 마냥 여쭤봤습니다.
과일장수가 복숭아 농사 지을 것도 아닌데 뭘 그런 것까지 궁금해하냐고 말씀하셨지만 내심 저의 호기심이 재미있으셨나 봅니다. 그동안 안 해주셨던 복숭아꽃의 씨방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께 복숭아꽃 이야기를 가볍게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복숭아는 크게 유모종(有毛種)과 무모종(無毛種). 뜻 그대로 유모종은 털이 있는 복숭아 '털복숭아'를 말하고 무모종은 털이 없는 복숭아 '천도복숭아'를 말합니다. 그리고 유모종 털복숭아는 과육의 색에 따라 백육계(백도)와 황육계(황도)로 나뉘죠.
털 알레르기 때문에 털복숭아 못 드시고 천도복숭아만 드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심하신 분들은 복숭아꽃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런데 이러한 복숭아 종류는 꽃만 봐도 구분이 가능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복숭아 생산지에서는
털이 있는 유모종 복숭아는
털복숭이
그리고 털이 없는 무모종 복숭아는
뺀질이
라고 부른답니다.
유모종은 씨방에 솜털이 있고 무모종은 씨방 주변이 털 없이 맨질맨질합니다. 그리고 과육이 황색인 황도나 천도복숭아는 꽃받침 내부의 색도 주황빛이 난답니다. 사실 농부님들 중에서도 본인이 처음부터 식재한 밭이 아닐 경우 본인이 농사 짓는 품종이 어떤 품종인지 정확히 모르고 농사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복숭아의 경우 꽃만 봐도 천도복숭아인지 털복숭아인지 백도인지 황도인지 구분이 된다는 사실! 재미있지 않나요?
이상 과일은 안 팔고 돈 안 되는 짓만 일삼는 낭만 과일장수 공씨아저씨였습니다.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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