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0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싫었던 책은 제목이 '청소년을 위한'으로 시작하는 것들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시절 내 수준에 딱 필요한 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는 그 제목이 그렇게 싫었다. 뭔가 청소년을 애 취급하는 것 같은 불쾌함과 동시에 거기에는 뭔가 어른들 보는 오리지널 책에 있는 게 다 들어있지 않은 반쪽짜리 책일 것 같은 묘한 불신도 있었다.
19금으로 극장에 걸렸던 영화가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로 티브이에 방영될 때면 키스신과 러브신은 모두 잘려나간 반쪽짜리 영화를 봐야만 하던 시대였기에 충분히 그럴만했다. 그래서 현학적인 말들로 가득한 이해도 못할 어른들의 인문사회학책을 오기로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쌍벽으로 싫었던 게 '권장도서'였다. 난 네가 절대로 길들일 수 없는 나인데 무언가 내 삶을 정형화된 틀속에 넣으려고 하는 게 그렇게 짜증 나고 싫을 수가 없었다. 군사정권 시절에서 9년 그리고 문민정부에서 3년의 학창 시절을 보낸 탓에 내 몸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반골기질 일수도 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6월이면 어김없이 해야 했던 반공포스터, 반공글짓기 그리고 반공웅변대회를 더 이상 학교에서 볼 수 없게 되고 나서야 그동안 왜 반공 어쩌고를 해야만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의 그 배신감과 분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윤나이 14세, 예비 중3 둘째 아들 D.S가 최근에 소설책 몇 권을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는 기적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우리 집이다. 이때다 싶어 책 읽는 재미와 함께 글 쓰는 재미도 좀 느끼면 좋을 것 같아서 녀석이 읽을만한 책을 좀 찾아봤다.
청소년 권장도서나 글쓰기 추천서에서는 고르고 싶지 않은 곤조가 여지없이 발동했다.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가 내가 한번 읽어보려고 도서관 관심도서 리스트에 저장해 놓은 책 하나가 생각났다. 책이라는 것이 본인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읽어지는 거지 누가 옆에서 읽으라고 권한다고 읽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요즘 음악에 푹 빠져 있는 녀석에게 글을 쓴다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노래 가사를 하나 작사한다는 느낌으로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책을 건네어보았다. 다행히도 녀석이 미끼를 덥석 물었다. 재밌다고 한다. 경험상 책을 읽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쓰는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 나다. 써봐야 비로소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에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열심히 읽을 것이다.
권장도서가 그렇게 싫었던 소년은 커서 미팅이 그렇게 싫은 자만추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결혼은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과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권장도서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