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8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좋아질 기미가 보이는 곳은 없다. 초중고 개학을 또 2주 연기했다. 아이들은 집안에 갇혀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고, 학부모들 또한 지옥이다. 매일 밤 뒷동산 공원에 올라가서 트랙을 한 시간씩 미친 듯이 뛰고 오는 것이 요즘 우리 아이들의 유일한 외출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개학 연기에 따라 학교 급식과 관련된 회사와 농가들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갈 곳 잃은 농산물을 소비시키고자 많은 분들이 함께 노력하고 계신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최근순 강원도지사의 SNS 공유 한 방으로 주문 폭주, 완판 등의 기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농산물 유통인으로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임시방편은 될지 모르겠지만 안타깝지만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한다면 나는 농산물 유통의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얼마 전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서 유통업자라는 단어가 나왔다. 나는 유통업자보다는 유통인이라고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먼저 이야기했다. 업자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업자(業者) :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으로 전혀 이상할 데 없는 정상적인 어휘였으나 나는 왜 이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을까?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이 단어에는 유통인을 돈만 밝히는 사기꾼 정도로 보는 대중의 시선이 존재한다. 우리가 하는 일 자체를 하대하는 뉘앙스가 은연중에 깔려있다고 평소에 느껴왔다.
최근 마스크 대란으로 인해 제조사와 유통사의 관계와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있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정말 유통인들이 욕먹어도 할 말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일부의 유통인들이 벌이고 있는 부도덕한 일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분노를 외면할 수 없다.
내가 협력 농가를 선정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사람이다. 농민의 인성. 무슨 도덕 시간도 아닌데 인성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일을 하다 보면 결국 일을 잘되게 하는 것도 일을 망치는 것도 사람의 인성임을 오랜 시간 동안 느껴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성장했다. 신규 업체들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난다. 특정 품목의 농사 잘 짓는다고 소문난 농부들의 수는 한정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규 업체의 입장에서 가장 손쉽게 품목을 늘리면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방법은 이들의 농산물을 공급받는 것일 것이다. 정말 많은 수의 신생 농산물 유통사들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부분의 회사가 이 방법을 취한다. 무엇이 잘못인가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의 농부를 만나 그 농부의 농산물을 판매하며 서로 호흡을 맞추고 매출을 늘려나가는 과정은 그리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독점구조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이 쌓아놓은 노력의 결과를 가로채는 방식은 나는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신규 농부를 발굴해서 그분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유통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이상주의적인 생각일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건강한 생태계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팔고 있는 과일 농가들에 접촉하는 신생 업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공씨아저씨네와 협력하는 농가를 선택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유통해 왔는 지다. 계통출하에만 의존하는 농가도 있고 최근 귀농한 젊은 농민들은 100% 직거래로 농산물을 판매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온라인에만 몇 개의 판매처를 두고 다양하게 공급하는 농민들도 있다.
나는 기존에 온라인 채널을 갖고 있는 농가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 유통구조다. 내 입맛에 맞는 농가를 찾는 게 쉽지 않아 품목을 늘리는 게 한없이 더디기도 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이 방법이 맞다고 믿기에 이리 실천한다. 이미 기존에 온라인 유통 판매처를 가지고 있는 농가의 농산물을 판매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기존에 그 농가와 함께 처음부터 파트너십을 이뤄온 기존 판매처의 노력을 중간에 가로채는 행위라 생각하고 다양한 판매처를 늘리기에 급급한 농민이라면 나 역시 그냥 부속품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이 이룩해 놓은 것을 너무 쉽게 날름 먹으려고 하는 유통사들에게 참 아쉬움이 크지만 동시에 농민들도 욕심내지 않았으면 한다. 힘든 시기도 있겠지만 함께 극복해 나아가 한다. 한 농가의 온라인 판매처가 내가 전부인 상황과 다른 곳이 또 있다는 것은 내 마음가짐을 다르게 한다. 내가 아니라도 다른 데서 잘 팔면 되니까 하는 안이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목숨을 건다는 표현이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이건 재가 죽어도 다 판다는 책임감이 농산물을 유통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농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사람의 욕심은 똑같다. 유통인과 농민 누가 더 욕심이 많냐고 묻는다면 나는 똑같다고 말하고 싶다. 농민이라고 욕심이 없지 않다. 때로는 농민들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이 유통인들이 겪는 일이다. 농민들이 한눈을 팔지 않도록 끊임없이 체크하고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농민들에게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채널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나는 건강하다고 본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자 학교급식에 들어가기로 약속한 물량이 공중에 붕 떠버린 상황이 종종 발생을 한다. 학교 급식에 몰빵 하게 되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문제다. 이럴 때 온라인 판매 채널이 있다면 온라인 채널에서 힘을 좀 내줄 수 있다. 반대로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를테면 택배사 혹은 물류 쪽의 총파업 등의 이슈로 택배가 묶여버리는 상황이 생겼을 경우 오프라인 채널에서 힘을 써준다면 좋겠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서로 더 가져가려고 싸움하는 시장이 아닌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출의 감소 새벽 배송의 증가 매장 몇 개를 문 닫기로 했다는 뉴스가 이 바닥의 생태계가 조금 건강하지 않은 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