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록

2020.08.25

by 공씨아저씨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어제 장수 신농 영농조합 사과 밭에 다녀왔습니다. 작년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故 김경훈 농민의 사과 밭에 먼저 들렀습니다. 이 밭은 현재 사모님과 농수산 대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 그리고 아버님이 열심히 농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밭도 둘러봤습니다.


올해 봄에 냉해 피해로 과수 농가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뉴스를 통해서 접하셨을 겁니다. 저희 같은 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일반 소비자분들에게는 그냥 흘려버렸을 뉴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사과, 배 농가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어제 아리수 밭을 보고 한 동안 얼어붙었습니다. 보통 이맘때면 색이 나기 시작해서 열흘 정도 뒤면 수확할 시기인지라 어느 정도 울긋불긋한 빛깔로 뒤덮여 있어야 할 사과밭이 누런 배밭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IMG_9938.jpg


저것이 바로 올봄 냉해 피해의 결과입니다. 동록(銅綠) 현상이라고 하는데요. 흔히 현장에서는 사비가 끼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이미 봄에 사과가 작은 방울토마토만 한 크기였을 때부터 저 상태였습니다.


동록 현상은 아리수 품종에서 원래 좀 잘 생기고, 겨울철 먹는 후지에서도 자주 보는 증상이지만, 아마 그 부위가 크지 않아서 아마 의식하지 못하고 드셨을 겁니다. 참 재밌는 건 사비가 낀 거친 사과가 더 맛있다는 걸 이제 소비자들도 아실 겁니다. 그러나 이 사과를 보시면 느낌이 좀 남다르실 겁니다. 맛에는 아무~~~ 런 지장이 없습니다.


공씨아저씨네는 크고 예쁜 과일보다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과일이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조그마한 과일가게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지금 사진 속의 아리수를 올해도 역시 판매합니다. 이 상태 그대로요.


사과 이야기는 추후에 판매 공지 올리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간략(?)하게 여기까지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건강한 생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