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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말아야 할것

2020.10.20

by 공씨아저씨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사과 처음 팔기 시작했을 때 제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언젠가는 꼭 이랬으면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메모해 두었습니다.


➀ 사과 밭에 반사필름 깔지 않기

➁ 사과 크기별 가격 구분 없애기

➂ 지나친 적엽(잎 소지) 작업하지 않기

➃ 'B급'이라는 워딩 걷어내기

- A급, B급, 선물용, 가정용이라는 워딩 모두 없애기

➄ 5,6 다이(5킬로 기준 17~23과) 위주의 먹기 편한 크기로 사과 키우기

등등.


IMG_2341.jpg


모두 시도는 해보았습니다. 일부는 자리를 잡았고 일부는 계속 시도 중입니다. 밭 전체의 물량을 책임지지 않고서는 모두 다 제 뜻대로 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농민 입장에서는 대단한 모험이니까요. 너무 힘들어서 솔직히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때로는 기존 시장의 등급 기준대로 판매도 해보았습니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보다 농민을 설득하는 일이 더 어렵지만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불필요한 일일 수 있으나 저에게는 유의미한 일입니다. 매출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 어쩌면 방해 요소일 수 있지만 제가 과일장수의 삶을 마감하기 전까진 꼭 해보고 싶은 작은 희망사항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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