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5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농가에서 우체국 계약 택배를 쓰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계약 조건도 까다로워져서 기본 채워야 할 물량이 월 100건이라고 하면 일 년에 1,200건을 채우면 계약이 유지되던 것이 이제는 무조건 월 100건을 채워야만 계약을 연장해줍니다. 일 년에 3,000건을 해도 월 100건을 못 맞추면 계약 종료. 가공품을 판매하지 않는 일반 농가의 경우 일 년 열두 달 팔 농산물은 없습니다. 특정 작물이 특정 기간에 몰려서 출하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계약 연장을 막겠다는 우체국의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5킬로 상품 기준 1건당 계약 택배 요금은 3,000원 내외인 일반 택배와 달리 우체국 택배를 사용하면 기본요금이 4,500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저희 같은 사람이 일반 계약 택배를 쓰다 우체국 택배로 변경하면 판매가가 최소 1,500원 인상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제조사(농가)와 판매처(유통사)에서 이 비용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는 힘듭니다. 배달의 민족 라이더스 요금과 다르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한 가맹점 입장에서는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점주의 부담을 늘리는 구조니까요. 당연히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택배비를 아직도 농가에서는 본인들이 서비스 차원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슬픈 이야기죠.
지역에서는 우체국에서 택배 서비스를 이제 없애려는 모양이다라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나왔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올해 협력농가 2곳에서 우체국 택배 계약 연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체국 택배가 가격은 제일 비싸지만 배송사고가 그만큼 적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저희 같은 사람들은 우체국 택배를 쓸 수밖에 없는 품목들이 있습니다. 농가 입장에서도 일반 택배의 경우 기사님들이 농가로 물건을 픽업을 오시는데 반해 우체국 택배는 매일 3시 30분 이전에 물건을 우체국까지 직접 가져다줘야 하는 불편함을 안고서도 말입니다.
올해 처음 시작한 영주의 사과 농가도 우체국 택배 계약 재연장이 되지 않아 CJ 대한통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반 택배로 보내면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10년간의 경험치에서 나온 데이터입니다. 목요일 출고한 사과가 고작 185박스였는데 벌써 4건이나 파손 건이 접수되었습니다. 2%가 넘는 비율입니다. 우체국 택배를 사용할 때는 단 한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파손 건입니다.
종종 손님들 중에 포장에 좀 더 신경을 쓰여야겠다고 충고를 해주시기도 하지만 이건 포장에 신경을 쓴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설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희 같은 업계 종사자들만 알지요. 만약 소비자 분들이 택배사의 중간 HUB 물류센터의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목격한다면 100마디 말이 필요 없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파손 건은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요.
올해 첫 배송을 시작한 복숭아 병조림은 파손이 쉬운 유리병이라 우체국 택배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배송비 부담과 역시 우체국까지 직접 가져다줘야 하는 이슈가 발목을 잡아 한진택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진 택배에서도 유리병 제품은 잘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본인들도 배송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이에 따른 보상 문제를 처리하느니 차라리 물건을 받지 않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배송 중 파손 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접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숨진 택배 노동자만 5명. 그 중심에 CJ 대한통운이 있습니다. 업계 1위인지라 처리해야 할 물량도 그만큼 많겠지요. 이들의 하루 작업 물량과 물류센터에서의 선별 과정을 보면 파손 사고는 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전 공장에서 공산품을 만들어도 일정 부분의 불량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일반 택배로 배송을 보내고 나면 일정 퍼센트의 파손과 재배송이 있을 거라고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손실은 제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소비자 분들이 화만 내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어떻게 이런 물건을 보낼 수 있냐고 말이죠. 우연히 나한테 온 것이 파손이 되었을 뿐. 지금의 택배 시스템 안에서는 누군가에게는 늘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택배 기사님을 욕하지 말아 주세요. 배송 중 파손 사고는 구조적으로 택배 기사님이 물건을 험하게 다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랍니다. 혹시 어제 시나노 골드 사과받으시고 사진과 같은 문제 발생한 분들은 게시판 혹은 1:1 문의에 사진과 함께 남겨주시면 됩니다. 물류센터에서 낙상하거나 선별 과정 중에 누군가 밟고 올라가서 생긴 케이스로 봅니다. 사과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도 배송 시 문제가 생기면 동일한 방법으로 대처해주시면 됩니다.
즐거운 주말에 좀 우울한 이야기를 드렸네요. 변명과 해명 대신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