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4
저희 집 탐조인의 책상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새 관련 책들이 쌓여있습니다.
저희 집 탐조인과 같이 뒷동산에 오르면 가끔 탐조인한테 혼이 납니다. '아빠!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걸을 때 소리 안 나게 걸으셔야 돼요~'등. 졸지에 새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무개념 아빠로 등극을 합니다. 저 그렇게 개념 없지 않은데...
그래도 그런 소리를 듣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탐조인이 새를 아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탐조인의 주머니에는 늘 새들 줄 먹이(잣, 땅콩)와 물통이 들어있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손바닥 위에 먹이를 올려놓으면 와서 먹는 녀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새들에게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당연히 멀리서 관찰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쌍안경이 탐조의 필수템임에는 확실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사진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강남역 한복판에 있는 C 카메라 매장에서 카메라를 판매했던 이력도 있습니다. 지금은 과일장수로 살고 있어서 과수원에 가서 과일 사진 찍는 게 카메라를 잡는 유일한 순간이지만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카메라를 잡지 않고 살았던 저도 탐조인과 함께 새를 보러 다니면서 좀 더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낍니다. 휴대폰 카메라의 줌으로 찍기에는 화질이... ㅠㅠ
어떤 카메라와 렌즈가 있으면 좀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략 견적을 뽑아보기도 합니다. 대포 같은 망원렌즈를 메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도 해봅니다. 사진을 찍고자 새를 보러 다니면 몸은 무거워집니다. 이것저것 챙길 장비들이 많거든요. 어느새 주객이 전도가 되죠.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새를 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만족을 위해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인가? 탐조 사진은 상당 부분 장비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덕질은 장비빨이라는 이야기가 있죠? 그런데 그건 제가 바라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통장에 돈이 없어서...)
탐조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탐조(birdwatching, 探鳥) 자연 상태에 있는 새들의 모습이나 울음소리를, 그것들을 손상하거나 놀라게 하지 않고 관찰 또는 관상하면서 즐기는 행위(두산백과사전)
핵심은 '새들을 손상하거나 놀라게 하지 않고'에 있습니다.
탐조인 덕분에 알게 된 '새덕후'님의 유튜브를 보며 좋은 점은 저분은 새를 진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장비보다는 탐조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탐조인의 아빠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시고 지나가다가 새소리가 들리면 관심을 갖고 찾아보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합니다. 가끔 무슨 새냐고 저에게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세요. (바로 탐조인에게 토스~)
새를 무서워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예전에 비둘기가 저희 집 아파트 실외기에 둥지를 틀었던 경험이 있는데요. 생명이라 내쫓을 수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비둘기가 알을 낳기 위해 둥지를 틀고 똥과 털들도 베란다가 완전히 엉망이 되었던 악몽이 있어서 새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귀소 본능이 강한지 해마다 저희 집 베란다로 와서 알을 낳으려고 해서 베란다를 막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시 생각해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의 원래 주인은 누구였을까? 산을 깎고 숲을 없애고 만든 이곳은 원래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아니었을까? 하고요. 녀석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이 녀석들의 주거 공간을 뺏어간 것이 먼저였을 테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새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탐조 본연의 행위에 좀 더 충실하려고 합니다. 탐조인 아들 덕분에 아빠는 오늘도 조금 더 어른스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