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진리인 듯합니다.
박새와 쇠박새도 구별 못한다고 저희 아들 녀석에게 구박받으면서 새보러 쫓아다닐 때가 좋았습니다. 도감을 열심히 봐서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새에 대해 잘 모르지만 뒷산의 박새를 보고 있을 때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저에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새를 보기 시작한 이유이고 물론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새를 볼 생각입니다. 많은 탐조인들이 더 많은 새를 보는 것을 자랑삼아 먼 곳까지 찾아다니는 노력을 합니다만 화석연료를 써가면서 저까지 새를 찾아다녀야 하는 게 맞나 싶었습니다. 박새와 쇠박새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말이죠.
새를 보다 보면 사진에 욕심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새 사진은 사실 사진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탐조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사진을 전공했지만 600mm 망원 렌즈는 스포츠 기자나 자연 다큐멘터리 쪽 외에는 사실 쓸 일이 거의 없는 렌즈라 예전에 캐논 매장에서 근무할 때 한두 번 만져본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새를 보다 보니 새 사진을 제대로(어떤 종인지 구별하고 새의 특징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찍으려면 600미리는 있어야겠더라고요. 그 렌즈의 가격과 무게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1의 고민도 없이 포기했습니다. 사진과 영상(무엇인가를 남겨야겠다는)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더없이 편하게 새를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새를 보기 시작하면서 절대 카메라와 렌즈를 다시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새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머리에 쥐가 나서 도감을 쳐다볼 엄두가 안 났습니다. 새의 각 부분의 명칭은 뭐가 그리 복잡한지 눈, 눈태. 눈앞, 이마, 부리, 턱, 멱, 빰부터 시작해서 머리 중앙선, 머리 옆선, 눈썹선, 눈 선 그리고 첫째날개깃, 둘째날개깃, 셋째 날개깃 등등.
얼마 전에 새 세밀화를 그리는 이우만 작가의 '새를 만나는 시간'이라는 책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따뜻하게 읽은 에세이 같은 책입니다. 저와 새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담아있는 분이 계셔서 너무 반가웠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새에 관심을 좀 가져보고 싶은 분들의 첫 책으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둘째 아들 녀석도 재밌게 봤는지 탐조 선생님 박형욱 PD 님께 생일선물로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이우만 작가의 책을 사면 안 되겠냐고 하더군요.
책들을 많이 내신 것 같으니 우선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사기로 하고 어제 도서관에서 가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새들을 보기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니 녀석들의 먹이를 알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군요. 녀석들의 움직임은 곧 먹이를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정이기도 할 테니까요.
녀석들의 먹이를 알기 위해서는 나무, 풀, 꽃, 벌레, 곤충 등을 알아야 합니다. 역시 공부에는 끝이 없습니다. 새는 제 삶의 활력소이지만 아직 새를 학술적으로 공부할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습니다. '새들의 밥상'은 뒷산 산새들의 먹이에 대해 재밌게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반면 '뒷산의 새 이야기'는 아직 도감을 볼 준비는 안되어있지만 새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의 입문용 책으로 좋습니다.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정도로 쉽고 재밌습니다. 읽고나면 당장 뒷산으로 달려가고 싶어지실 겁니다. 작가 역시 '제 책을 읽고 나면 가까운 산책길에 만나는 새들의 이름은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린 자녀를 두고 계신 회원님이시라면 도서관에서 가서 책을 빌려서 아이 옆에 슬쩍 놓아봐 주세요.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전공자가 아닌 이상 세상 재미없는 책 중에 하나다 도감일 겁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대학 후배 녀석이 저희 애들 어렸을 때 선물로 보내준 도감이 늘 책꽂이에 꼽혀 있었는데 저희 둘째 아들 녀석이 어려서부터 심심할 때마다 도감을 꺼내 보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일 겁니다.
문화 상품권의 주인공은 '새들의 밥상'으로 정했습니다. 이우만 작가는 세밀화 작가이시지만 새를 보는 시선과 방향성이 참 따뜻하고 관찰력이 좋으셔서 배울게 많은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