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때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야.
그 후 한번도 엄마가 드물게 예쁜 얼굴이란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빛이 사라졌거든. 영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걸 직감으로 눈치 챈 거야. 이해가 가? 전구가 꺼지듯 어느 날 갑자기 빛이 사라져버린 거야.
그때 알았지, 인간의 영혼은 저 필라멘트와 같다는 사실을.
어떤 미인도 말이야... 그게 꺼지면 끝장이야.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받는 인간과 못 받는 인간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커.
(...)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