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꼭 슬퍼야만 우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출발한 감격이 벅차올라 눈 밖을로 물이 되어 흘러 나오기도 한다. 어젯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혀 울고 또 울었다.
2.
조규성이라는 스타를 탄생 시켰던 가나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3대2의 석패와 더불어 감독의 퇴장, 수비의 핵 김민재의 부상등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3.
사실상 9%의 희박한 16강 진출의 확률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국민들은, 희박한 확률에 도박이라도 하듯 그저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4.
뚜껑을 열어보니 포르투갈은 생각보다 강했다. 베스트 멤버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오프 더 볼의 선수들이나 빈 자리에 정확히 공을 넘겨주는 패스의 질이 앞선 두 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5.
그러나 전반 5분에 터진 선제골은 오히려 포르투갈에 독이 되었다. 경기에서 져도 16강에 조1위로 올라가는 팀과 지금이 아니면 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뒤도 안돌아보고 뛰는 팀은, 마음가짐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6.
월드컵 3차전의 사나이 김영권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가능성으로 선수들은 뛰고 또 뛰었다. 특별히 오른쪽 윙백으로 뛰었던 김문환 선수는 이 경기의 보이지 않는 영웅이었다. 빠른 공수전환과 더불어 그의 발 끝에서는 집념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2002년 루이스 피구를 가뒀던 송종국의 모습이 그에게서 보였다.
7.
황인범과 정우영의 조합은 경기가 지날 수록 더 좋아진다. 황인범의 영리함과 정우영의 안정감은 현재 대표팀에서는 대체자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케미를 가지고 있다. 부상에서 돌아온 황희찬이 교체 투입 되는 순간, ‘어쩌면 황희찬이 일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
터질듯한 허벅지에서 나오는 폭발력과 무너지지 않는 무게중심을 가진 황희찬은 포르투갈의 수비수들과 몸싸움을 충분히 이겨내고 돌파할 수 있는 우리 팀의 비밀 병기였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소속팀에서의 부진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한 1,2차전의 결장으로 인한 떨어진 경기감각이 우려되었다. 그러나 공격수는 결과로 보여주면 됐다.
9.
손흥민의 마스크는 90분 내내 그의 시야를 불편하게 했고, 다소 무리한 드리블로 모든 기회를 날려버리는 듯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후반 추가 시간 단독 드리블에 이어 황희찬에게 건내준 어시스트는그가 왜 월드클래스 선수인지 증명해 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리플레이로 느리게 살펴보면 손흥민은 자신이 막히자 고개를 살짝 들어 황희찬을 보고 가랑이 사이로 패스를 넣어준다. 황희찬은 이를 놓치지 않았고, 늘 하던대로 편하게 일대일 찬스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10.
기적적인 2:1 승리를 거두고도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던 우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나서 주어지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기다림속에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가나도 우루과이도 그리고 포르투갈도 우리의 16강 진출을 위한 위대한 드라마속의 각 역할을 잘 감당해 주었다.
11.
무려 12년만의 16강 진출. 상대는 브라질. 반 년전 5대1의 충격적인 패배를 선사했던 그 팀. 상관없다. 괜찮다. 공은 둥글고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16강에서 허무하게 무너진다 해도 그들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밤 가장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었던 그들의 투혼은 우리에게 충분한 선물이었다.
12.
이제 부담을 좀 덜고 더 편하게 하고 싶은 축구를 마음껏 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그대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고국 대한민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