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마지막 뒷주머니
오늘은 공식적인 요양 생활의 마지막 날이자, 한 해의 끝자락이다.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수술 후 2주일, 긴장된 마음으로 마주한 주치의 교수님은 경과가 아주 좋다며 이제 일상생활로 복귀해도 좋다는 기분 좋은 ‘허락’을 내려주셨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서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강 건너 집으로 가는 교통편은 조금 애매했지만, 내게는 남는 것이 시간이었고 코끝을 스치는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맑았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한강 다리를 뛰어 건너기로 했다.
다행히 보행로가 잘 갖춰져 있어 달리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쌀쌀한 날씨도 몇 발짝 내딛고 나니 금세 기분 좋은 온기로 바뀌어 살짝 땀이 뱄다. 머리 위로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발아래로는 고요한 한강의 물결이 흐르는 풍경 속을 달리니 비로소 살아있다는 감각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수술과 회복으로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기분, 그것은 치유 그 자체였다.
집에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고 집안 공기를 환기시킨 뒤 정성껏 커피를 내렸다.
향긋한 커피 향을 즐기며 유튜브를 뒤적이다 멋쟁이 할머니 유튜버, ‘밀라논나’ 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분은 매년 새해마다 ‘버려야 할 습관 하나’와 ‘새로 만들 습관 하나’를 정하신다고 한다.
그 단단한 삶의 태도에 자극을 받아, 나 역시 2026년의 뒷주머니에 담을 세 가지 목표를 세워보았다.
첫째,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단단한 중년이 되고 싶다.
때로는 날뛰는 감정이 여과 없이 얼굴과 태도에 드러나고, 특히 가장 가깝고 소중한 가족들에게 그 서툰 감정을 표출할 때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별일도 아닌데 왜 그리 미성숙하게 대처했는지 후회와 괴로움의 반복이었다. 이제는 감정의 트리거가 당겨지는 순간, 나 자신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려 한다. 한 호흡 멈추고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유, 그것이 나이에 맞게 근사하게 늙어가는 첫 번째 연습이 될 것이다.
둘째, 한 달에 한 번은 가족과 함께 국내 여행을 떠나려 한다.
지난 2년간 MBA 과정을 이수하며 주말마저 과제와 수업에 내어주어야 했던 시간이 많았다. 이제는 조금 한가해졌나 싶지만,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 두 아들의 학원과 예체능 일정으로 주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내와 잘 상의해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길을 나서보려 한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함께 여행지를 고르고 계획하며, 훗날 꺼내 볼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모아두고 싶다.
셋째,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려 한다.
내년 3월 뉴발란스 하프마라톤 추첨에서는 떨어진 모양이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4월 군산 마라톤 대회를 목표로 삼았다. 11월 하프마라톤 이후 찾아온 장경인대 통증과 이번 망막전막 수술로 인해 한 달 반 가량 러닝을 쉬었기에 4월까지 풀코스 몸을 만들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은 없다. 하지만 이번에도 AI 코치님의 가이드를 잘 따라가며, 한 걸음씩 완주의 꿈을 향해 나아가 보려 한다.
2025년도 이제 불과 13시간 남짓 남았다.
회사 업무와 학업, 그리고 두 아들의 육아까지 참으로 버라이어티 했던 한 해였다.
내년이라고 해서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밀라논나 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나도 내 ‘시간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싶다.
거친 파도 같은 주변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여유와 인내, 그리고 포용이 몸에 밴 어른.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