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과 최소한의 배려

동료 아재의 씁쓸한 관찰기

by 아저씨의 뒷주머니

칼날 같은 북극 한파가 살결을 파고들 때면, 우리의 외투는 추위에 비례하여 두터워진다.

패딩과 코트, 두툼한 목도리로 무장한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한정된 공간에 빼곡히 들어차면, 물리적인 여유는 평소보다 훨씬 더 좁아지기 마련이다.

부풀어 오른 패딩의 부피만큼 사람 사이의 거리도 비좁아지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작은 불편함들이 싹을 틔운다.

오늘 퇴근길 지하철 풍경이 그랬다.

내 앞에 앉아 있던 분은 왠지 모르게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서 있다가, 마침 그분이 먼저 내리는 덕분에 운 좋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지친 하루 끝에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작은 행운에 설레며 엉덩이를 붙였지만, 그 기쁨은 채 몇 초를 가지 못했다.

앞에 계셨던 분이 왜 그토록 불편하게 앉아 있었는지 금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옆자리에는 풍채가 좋은 한 아저씨가 완강하게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가뜩이나 두툼한 외투를 입은 데다 팔짱까지 껴서 양팔을 옆으로 벌리니, 그의 팔의 일부는 이미 내 자리의 영역을 한참 침범하고 있었다. 내가 똑바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기 힘든 상황이었다.

'내가 이 정도로 불편함을 느끼면 옆 사람도 인지하겠지, 곧 팔을 풀어주겠지' 기대했지만 그의 팔은 풀리지 않았다. 은근 오기가 생겨 나도 어깨에 힘을 주어 내 자리를 지켜보려 했지만, 그는 끝내 두 팔을 풀지 않았다.

유독 지하철에서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쓰고 있는 동료 아재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그 자세가 주는 안락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불쑥 솟아오른 배 위에 두 팔을 얹었을 때 느껴지는 그 묘한 안정감과 편안함은 아주 잘 안다.

하지만 대중교통은 나 혼자만의 안방이 아니다.

팔짱을 풀고 두 손을 가지런히 앞쪽으로 모으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옆 사람에게 소중한 몇 센티미터의 자유를 선물할 수 있다. 그것은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포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아재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왜 그들은 좁은 자리에서조차 날 선 표정으로 자신의 영역을 고수해야만 할까. 칼바람이 부는 바깥세상보다 더 차가운 것은, 어쩌면 타인의 불편함에 무뎌진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조금씩만 팔을 모으고 어깨를 접어준다면, 이 비좁은 지하철 안에서도 서로의 온기를 기분 좋게 나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배려라는 가치가 점점 자취를 감추는 것 같아 씁쓸한 퇴근길이었다.

내일은 나부터라도 내 뒷주머니에 담긴 작은 배려를 먼저 꺼내 보이고 싶다. 내가 조금 좁게 앉더라도, 내 옆 사람은 조금 더 숨을 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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